찹쌀을 불리고 함께 넣을 재료들을 씻고 칼질을 합니다.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리면 쉬울텐데 굳이 갈지않습니다. 쉽게 죽은 끓인다는게 먹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입니다. 평소에는 죽 같은걸 내손으로 끓일 생각도 안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해봐야겠습니다.
죽을 끓일때마다 자꾸 재료들이 추가가 됩니다. 뭐든 많이 들어가면 그만큼 영양가가 높아질테고 또한 여러가지 맛이 어우러져서 환상적인 죽이 될 것 같습니다. 버섯도 표고버섯, 양송버섯. 노루궁댕이버섯 등 세가지 정도는 들어가야 할것 같고, 잣과 통깨도 충분히 넣으면 더 고소할 것 같습니다. 고기는 소화를 돕기 위해 다지고 다집니다. 전복도 한마리 잘게 깍둑썰기를 해서 넣습니다. 닭가슴살도 삶아서 손으로 가늘게 찢어놓고 새우살도 잘게 다져 놓았습니다. 육해공이 다 들어갔다는 생각에 스스로 뿌듯합니다. 아 참! 야채가 빠졌습니다. 당근을 아주 잘게 채썰고 단호박도 잘게 썰어 넣었습니다. 단호박이 살짝 단맛을 내니 더 맛있어 질것 같습니다. 수분이 수족한지 끓을때 풀덕풀덕 뜨거운 입자가 튀었습니다. 손등이 따갑기 그지없습니다. 불위에 그냥 두면 바닥이 눌어붙을까봐 물을 더 붓고 계속 저어줍니다. 물을 부었더니 처음에는 냄비의 삼분의 일 정도였는데 어느덧 사분의 삼정도 되어버렸습니다. 이거 큰일입니다.
구원투수로 냄비 하나를 더 꺼내서 끓이던 죽의 반을 덜어내어 다시 물을 보충해서 끓이기 시작합니다. 찹쌀 한공기가 이렇게 많은 죽을 만들어 내는지 몰랐습니다. 계속 저어줍니다. 다시 뻑뻑해져서 물을 더 부었습니다. 계속 저어줍니다.
저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정성을 들이는 음식이 또 있을까? 잠시만 자리를 뜨면 금방 눌러붙고 바닥이 타버릴까봐 꼼짝없이 붙어있어야 합니다.
간을 안해서 싱거울것 같아 간장을 찾았습니다. 냉장고에 양조간장이란게 있어서 그걸로 간을 합니다. 간장이면 모두 양조를 하지 굳이 상표에 양조간장이라고 강조할 건 또 뭔지요.
끓이면서 아무래도 뭔가 이프로 부족할 것 같습니다. 한국음식에 마늘이 빠지면 섭섭할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TV에서 보니 어떤 중식고수가 칼의 면으로 탁 치니 마늘이 으깨지더군요. 따라 해봤습니다. 내가 하니 사방으로 마늘이 튑니다. 몇번을 하니 그런데로 되는 것 같습니다. 더 다져서 마늘도 충분히 넣었습니다.청양고추를 넣으면 칼칼한 맛이 살아날 것 같습니다. 다행히 냉장고안에 약간은 시들해진 고추가 있어서 동그랗게 썰어서 넣었습니다.
물을 조금 더 부우니 다시 냄비의 사분의 삼정도가 되었습니다. 쌀이 완전히 불어 뭉게져야 죽 같을텐데 아직 쌀알이 살아있는것 같아서 불안합니다. 계속 저어줍니다. 슬슬 신경질이 나기 시작합니다. 무슨 놈의 죽이 이렇게 느리게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팔도 아프고 죽물이 뛰어서 손등도 따끔거립니다.
그래도 이거 먹고 툴툴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저었습니다. 죽의 색깔은 묘하게 거무틱틱합니다만 좋은건 다 들어갔으니 분명히 맛은 죽여 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