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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연 May 03. 2023

압록강에서.

나에게 민족이란.

북한의 신의주와 바로 접해있는 중국의 단동에서 일주일 정도 머문적이 있다.  그곳에서 보낸 공산국가에서의 첫날밤을 잊지 못한다. 혹시 잠든사이에  나를 조용히 깨우고 어디론가 데리고 가서 회유와 협박으로 나를 구속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첫날이었다.  숙소로 잡은 호텔은 단동의 재래시장, 우리로 치면 남대문시장쯤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여러가지 물자를 무역하기 위해 단동으로 온 북한사람들도 많이 묵는 곳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호텔조식을 먹기위해 식당으로 가면 그동안 자기들끼리 식사를 하면서 왁자지껄 떠들던 북한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불을 켜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바퀴벌레처럼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애써 나와의 시선을 피하고는 실눈을 뜨고 흘기듯 쳐다보던 그들을 기억한다.  내가 남한에서 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생김새나 옷차림이나 행동에서 남한사람의 특징이 나타난 것일까.  초면에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라도 누면 큰일이 나는 것일까. 일행과 나도 말없이 음식만 바라보며 꾸역꾸역 바쁘게 먹고 나왔다.

그 호텔에서 이틀을 머물다가 단동한인교회의 소개로 압록강 철교와 가까운 강변에 위치한 아파트의 10층에서 민박을 하게 되었다.  거실의 커튼을 히면 압록강이 보이고 건너가 북한의 신의주라고 했다. 내가 거기에서 북한땅의 광경을 본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알지못하는 두려움도 느꼈다.  여기서 북한땅을 바라보는 것이 파주의 통일전망대에서 북한땅을 조망하는 것 보다 거리면에서만 보더라도 훨씬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록강은 생각보다 강폭이 그리 넓지 않았다.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우리가 한반 지도를 그리는 바로 그선을 타고 내려오면서 수풍댐에서 한번 숨을 몰아쉰뒤 서해 윗자락으로 흘러드는 압록강은 해수를 만나면서 아직 친해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듯 뚜렷한 구분선을 만들며 잠시 머무르는듯 회오리를 만든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단동에 도착하기 바로 전 아침에 만날 수 있는 장관이다. 강에서 흘러드는 누런빛의 압록강 물색과 바다의 시커먼 색이 명확한 경계를 지으며 광활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이런 앙록강의 하구가 이렇게 좁을 줄이야.

높은 아파트에서는 강건너 북한의 선박들이 또렷이 보였고 사람들의 직임도 식별할 수 있었다.  낡은 경비함 같은 배며 통통거리며 어디론가 가고 있는 쪽배. 그리고 그위에서 윗통을 벗고 무엇인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 빨래를 하는 여인들까지 얼굴은 식별되지 않아도 다소 분주한 모습들이었다.

밤이면 단동쪽은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번쩍였다. 고급축에 속하는  식당들, 그 가운데 북한음식점도 있고 여러 종류의 주점들과 정이 가지않는 음악소리로 북적였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신의주는 불빛조차도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암흑세계가 펼쳐졌다.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는지 희미한 불빛하나가 거미처럼 느리게 움직일 뿐이었다. 너무도 대비되는 모습에 한동안 애잔함이 밀려왔다. 가슴 한편으로 심하게 저며오는 뜨거움을 느꼈다. 나의 잘못인양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는 곧 분노로 바뀌었다.   저곳에서 사는 북한주민들은 단동쪽의 불빛을 보면서 어떠한 생각을 할까. 부럽거나 오고싶지 않을까? 그쪽에서 산다는 것이 한스럽지는 않을까?  침대에 들었지만 내내 나를 괴롭히는 무거운 무게로 다가왔다.

다음날 하루종일 시간이 있어서 이른점심을 먹고 혼자서 압록강변을 걸을 계획세웠다. 지도를 보니 압록강의 제방둑을 따라 이어진 곳에 중국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만리장성을 단동까지 이어놓은 성벽의 끝자락이 있다는데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했기에 혈혈단신으로 무작정 거기까지 걷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지금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그러다가 도중에 심문이라도 당하거나  북한경비원이 갑자기 넘어와서 납치라도 했다면 어쩔뻔 했을까?  그때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른다.

강뚝을 한없이 걸었다. 강바닥보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낮으므로 높은 둑을 쌓아놓은 재방길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터덜터덜 걸으면서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북한쪽을 주시하고 있었고 한장면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애썼다. 강중간에 갈대밭 섬이 있으면 혹시 저게 그 유명한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의 바로 그곳인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열심히  걸었다.

북한쪽 나즈막한 산들이 열을지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벗겨 먹어도 어떻게 저토록완벽하게 벗겨 먹었을까 싶을 정도로 산들은 빨간 피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강 중간에 누워있는 갈대밭에서 북한경비병이 금방이라도 총을 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섬찟해진 것은 시간 가는줄 모르고 걷다가 어둑어둑해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면서 부터였다.  몇시간을 걷는 동안 제방둑으로 버스나 택시가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 머리발을 곤두서게 했다.  묘한 두려움이 온 몸에 전해져왔다.  제방둑 아래에는중국민가가 뛰엄뛰엄 있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물어볼 수도 없었다. 우측은 북한, 좌측은 공산국가 중국. 내가 살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나라와 체제다.

제방둑을 내려와 신작로가 있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생각했다. 무엇이 나올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내륙쪽으로 걸었다. 작은 구릉 하나를 넘으니 제법 넓은 아스팔트 도로가 나왔다. 그리고 저 멀리서 버스한대가 어둠속을 뚫고 오직 나 하나를 위해서 달려오는듯 했다. 무작정 손을 들었다. 버스는 내앞에 섰고 나는 버스안으로 황급히 빨려들어 갔다. 여성차장이 있는 관광버스처럼 보였다. 지폐 몇장을 보여주고 받아주기를 청했으나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로 무어라고 하면서 극구 사양했다.

스잔한 가을날씨 가운데 속옷이 젖어있다는걸 알았을때는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를 할 때였다.


침대에 누웠다. 내가 본 북한땅이 영사기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낯익은듯 공상속의 북한주민들이 애처롭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오늘 내가 본 것은 무엇이고 무엇이 나를 두렵게 했던가. 똑같은 사람끼리 삶의 방식이나 생각의 차이 때문에 서로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북한,  우리는 그들을 같은 민족이라 하지 않았나. 어떤 운명이, 어떤 역학적 변화 때문에 서로 인사 나누기도 어렵게 되었다는 말인가?

나의 내적갈등은 무엇인가?  그들이 나와 무슨 관계길래 북한의 편에 서서 중국과 대결하고 싶은 것인가? 만약 신의주의 밤풍경이 단동의 그것보다 더 화려하고 빛났다면 나는 기뻤을까? 왜 짠한 마음이 결국은 슬퍼지는걸까? 시집가는 누나의 뒷모습 같이 느껴지는걸까?

같은 민족이라는 동류의식을 내안에 주입한 교육이라는 세뇌가 이런 곳에서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다는 것, 사는 형편이 그들보다 낮다는 이유로 마음껏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 측은지심이 발동한다는 것, 한번이라도 더 그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건내고 싶다는 마음.

핏줄이라는 것이 서로를 연결하므로 우리는 통일을 부르짓고 민족임을 느끼고 한겨례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음날 대동강변 공원을 거닐때 허름한 상인의 이동식 자판에서는 북한의 지폐를 기념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김춘수님의 싯귀가 생각났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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