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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버니 Sep 18. 2023

로드트립과 연애사 (6)

웨스트버지니아 - Morgantown


어제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너무나도 화창한 아침이 찾아왔다. 오늘은 친구 집에서 멀지 않은 Coopers Rock State Forest에 등산을 가기로 했다. 친구 부부는 이사 후 벌써 몇 번 가본 곳이었는데 풍경이 아주 좋았다고 했다. 나의 첫 아팔래치아 산맥의 등산이라 무척이나 기대가 됐다.


친구는 테네시 주의 내슈빌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작은 도시에서 자랐다. 무려 8명의 형제자매가 있는 대가족에서 성장했으며, 더 놀라운 점은 9명 모두 엄마의 도움을 받아 홈스쿨링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친구의 아버지는 큰 캠핑카를 구입하여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미국 전역으로 하이킹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는 하이킹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웨스트버지니아로 이사 오기 전, 휴스턴에서 나를 이끌고 등산도 자주 하고, 재작년에는 캠핑여행에도 나를 데리고 가 준 적이 있다. 특히 작년 여름과 이번 봄, 내 상태가 영 말이 아닐 때도 일부러 나를 불러서 등산을 자주 갔는데, 새벽부터 나를 픽업 와서 서너 시간 조용한 등산로에서 수다를 떨면서 걷다 보면 기분이 좀 홀가분해져서 많이 도움이 되었다.


내 친구와 그녀의 남편은 대학 시절에 만나서 5년인가 6년 동안 연애를 하고 작년에 결혼했다. 내 친구는 남편보다 한 살 많은 연상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내 친구는 뉴욕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고, 1년 후 남편(당시 남자친구)도 친구와 같은 학교에 합격하여 뉴욕으로 따라갔다. 석사과정 2년 후, 친구는 박사 과정을 위해 휴스턴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1년 후, 다시 같은 학교에 합격하여 남편이 휴스턴까지 따라왔다. 사실, 친구가 다녀온 학교들은 미국에서 입학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손꼽히는 명문 학교들이라, 이렇게 두 번 연달아 같은 곳에 합격하는 것은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뉴욕과 휴스턴을 거쳐 이렇게 다시 한번 친구를 따라 웨스트버지니아까지 이사를 한 친구의 남편이다.


도오저히 더 이상은 못 먹겠다 지경까지 가서 백기를 던지고 나오던 우리

둘은 사실 아주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등산과 캠핑을 아주 좋아하는 내 친구는 채식주의자인 반면, 친구의 남편은 운동에 담을 쌓고 사는 엄청난 미식가이다. 특히 친구 남편은 고기를 정말 좋아하는데, 휴스턴에 살 때 고기나 초밥이 먹고 싶으면 언제나 나에게 문자를 보내곤 했다. 우리는 종종 오션팔레스라는 딤섬 레스토랑에 가서, 거기에 가면 정말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딤섬을 먹곤 했다. (좋을 때여…)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결혼해서 잘 사는 것을 보면 타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이번 봄, 일주일 정도의 봄방학이 주어졌을 때, 둘은 시간을 반반으로 나눠 계획을 세웠다. 봄방학 초반에는 친구가 좋아하는 캠핑여행을 떠났고, 캠핑 후에는 달라스에서 식도락 여행을 펼쳤다. 둘은 친구가 좋아하는 등산을 가게 되면 보상 아닌 보상으로서 언제나 등산 후 점심 먹을 곳은 남편이 정하는데, 이 날 점심을 먹을 레스토랑도 역시 친구 남편이 정했다.


Coopers Rock State Forest

아팔래치 안 산맥의 풍경은 너무나도 멋졌다.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은 푸른 나무로 가득했고, 그 사이에 흐르는 강 역시 아름다웠다. 친구 부부가 가보지 않은 새로운 하이킹 코스로 가기로 했다. 그리 가파른 곳은 없었지만 어제 밤새 온 비에 땅이 꽤나 젖어있었다. 혼자 등산을 했더라면 더 자주 쉬었을 텐데, 프로등산러 친구와 등산을 하다 보니 내 페이스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게 되었다. 휴스턴은 주로 평지라 하이킹을 가도 풍경이 그다지 멋지지 않은데, 이곳의 풍경은 아주 다채로웠다. 산길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과 폭포, 동굴, 멋진 바위가 계속해서 이어져서 지루할 틈이 없는 코스였다.







친구랑 내가 휴스턴에서 하이킹을 가면 꼭 이후에는 Denny’s라는 레스토랑에 가곤 했다. Denny’s는 팬케익, 프렌치토스트 등 미국식 아침식사를 하루종일 파는 체인 레스토랑이다. 우리는 항상 팬케익을 잔뜩 시켜 먹곤 했었는데, 등산 후 먹는 팬케익이라 칼로리 따위는 무시한 채 시럽을 콸콸 부어 먹곤 했다. (짱맛) 하이킹을 통해 땀을 흠뻑 흘리고 내려와서는 모건타운에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에 갔다. 아주 조그마한 레스토랑이었는데 여기서도 비슷하게 팬케익, 계란 등 미국식 아침 식사를 시켰다. 맛은 있었으나 Denny’s 만의 불량식품 같은 맛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등산 후에는 시럽을 콸콸 부어먹어야 제맛…


등산 후에 친구의 집에 돌아왔다. 친구는 한국계 미국인인 남편의 부모님과 소통하기 위해 몇 년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이번 해부터는 인터넷을 통해 개인 과외를 시작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 정말 기특하다. 소파에 앉아 친구의 한국어 과제를 도와줬다. 한국어 문법을 영어로 설명하려면 꽤 까다로운 부분들이 많다. 한국어는 뉘앙스가 중요한 언어라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몇 년째 노력하는 친구를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숙제를 끝낸 후 소파에 앉아 내 나머지 여정을 계획했다. 친구는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내 운전 코스, 숙소, 하이킹 코스 등을 모두 꼼꼼히 조사하여 문서 파일로 만들어 줬다. (고마워) 다음 도착지에서 머물 에어비앤비를 선택할 때, 친구는 수십 곳을 꼼꼼하게 비교하며 어디가 더 좋을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고르다 보니 너무 피곤해서 '네가 고르는 대로 갈게'라고 말하고 나도 모르게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셰프 부럽지 않은 솜씨

저녁으로는 친구남편이 만든 비빔밥을 먹었다. 웨스트버지니아로 이사 오고 둘은 작은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는데, 텃밭에서 갓 딴 호박, 상추까지 넣어 정말 맛있었다.


친구 부부가 자러 간 밤, 발코니에 앉아서 한참 책을 읽었다. 나도 다음 이사 가는 집에는 꼭 발코니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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