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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나무 Sep 10. 2023

여행담론

여행은 예술이다. 일상이 주는 안전과 사실을 벗어나 감각을 통해 느끼고 생소한 경험에서 기쁨을 느끼게 한다. 때로 이 생소함은 위험을 무릅써야 할 때도 있다.  나는 여행을 통해 모든 감각을 민감하게 만들어 일상의 안전과 사실을 세게 흔들어 그 사이에 깊은 고랑을 낸다.  이 고랑은 나의 일상을 뒤집어 새로운 삶의 의지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므로 여행은 내게 예술이다.


나는 동일 여행지를 세 번에 걸쳐 반복한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특정 장소에 직접 간다. 두 번째는 사진을 보면서 다녀온 장소를 되새기고,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가져온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그날의 감각과 생소함을 고랑으로 만든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은 누구나 하는 반복 여행이다. 그러나 나의 마지막 방법 때문에 가끔 남편이 남사스러워 하기도 한다. 나는 묵었던 호텔이나 비앤비의 객실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일회용 봉지 커피와 차를 잘 정리해서 가져온다. 특별할 것도 없는 잘 알려진 브랜드의 커피와 차를 늘 챙기는 나를 보며 남편은 그냥 마트에 가서 사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마트의 커피와 차는  누구나 살 수 있는 평균의 맛을 제공하는 그저 그런 커피와 차일뿐, 일상을 벗어난 감각과 생소함을 지 못한다.


여행지에서의 가족은 집에서 만나는 가족과 완전히 같은 사람은 아니다. 가족 역시 여행이 주는 낯섬을 즐기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도 하지만, <관계>라는 말은 <새로움>과 어울리지 않을 때도 있다. 따라서 가족은 여행지에서조차 나를 그 자리에 머물게 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일상을 비껴가기는 하지만 고랑을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객실에서 가져온 커피와 차를 마시는 시간은 <관계>를 끊어주며 오롯이 나 혼자만의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물리적인 장소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는 여행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모험과 새로운 감각에 때로 두려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두려움은 일상과 낯섬 사이의 고랑을 튼튼하게 다지기 어렵다. 모든 촉각이 예리하게 서있기 때문에 고랑보다는 산재한 구덩이에 가깝다. 구덩이의 깊이를 가늠하기 위해 구덩이에만 신경을 쓰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공감할 수 없는 낯선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


사진을 통한  되새김은

낯섬을 쉽게 이해하는 과정이 된다.


온몸으로 부딪치는 여행과 사진을 통한 되새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이지만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고랑이라 자신 있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반해 여행지에서 가져온 커피와 차는 물리적인 장소에서 생긴 구덩이를 메우고  새로운 고랑을 만들어 나의 일상과 낯섬을 양쪽으로 가지런히 정렬한다. 힘차게 고랑의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나는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견디기 힘든 삶의 무거움이 나를 짓누를 때 나는 반대쪽 고랑으로 넘어가 낯섬 속에서 나를 새롭게 정렬한다. 나는 무거움을 번쩍 들어낼 힘을 얻어 이것을 소분한다. 가벼워진 삶의 무게는 감당하기 쉬워지고 쉽게 변화 가능해진다.


오늘 어떤 것을 마실지 고르는 시간이 행복하다.


그날의 낯섬이 내게 스며들어와 고랑이 되는 마음 벅참이 행복하다.


객실의 커피와 차가 따뜻하게 목을 타고 흘러내려 갈 때 내 마음은 행복의 추상화를 그리고 나는 예술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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