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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Apr 14. 2023

자기 내일 산에 갈 거야?

택시에서 신혼부부의 싸움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02시

구로구 고척동 주택가에서 - 아현동 집으로 가는 신혼부부가 택시에 탔다.


둘은 아주 다정스러워 보였으며, 같은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두 사람을 배웅하였다.


택시에서 젊은 남자가 "자기 내일 산에 갈 거야?" 묻는다

이 물음에 젊은 여자의 대답에 약간의 날이 서 있다.

"자기가 그렇게 피곤해하니 나 혼자라도 갈 거야!"

순간! 택시 내부가 5초 정도의 정적이 흐른다.

뭔가 이상하다!

젊은 남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머릿속의 시냅스들이 복잡하게 작동하는 소리가 운전석까지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때!

젊은 여자의 한 마디가 나로 하여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고하도록 하고 있다.

"자기가 지난주 토요일날 산에 같이 가기로 하고 전 날 친구들하고 술 먹고 와서 많이 힘들었다고 하니, 혼자라도 갔다 올 거야!"

이 말에 젊은 남자의 응대가 시작되었는데, 말싸움에서 절 대 젊은 여자가 밀리지 않는다.

대화의 첫머리는 "자기" "자기야"로 시작하고 있지만

둘 사이에는 자존심이 걸린 논리 논쟁이 시작되었다.


남자 : 자기야 나는 그냥 지난 토요일에 힘들게 갔다 왔다는 이야기이지~

여자 : 자기야 그러니까~ 왜 금요일날 늦게까지 술을 먹냐고~ 토요일날 산행 약속을 했으면 간단하게 들어와야지! 분명히 토요일 약속이 있었음에도 금요일날 늦게까지 술을 먹었으니 힘들지~

남자 : 자기야~ 힘들어도 같이 갔다 왔잖아!


택시드라이버 : 젊은 사람들의 사랑싸움이 좀 귀여워서 부드럽게 음악 깔아 주었다(케논 피아노 변주곡)


여자 : 그러니까 아까 친구들한테 내가 자기 힘든데, 억지로 산에 끌고 간 것처럼 이야기한 거잖아~


택시드라이버 : 나는 생각했다 "음 요지가 이거구나!"

                     재미있는 상황을 좀 더 들어보며 마포구 아현동으로 향하는데, 읔!!

                     말싸움, 아니 논리싸움에서 절대적으로 밀리는 남자의 강정이 쏟아지는 서막이 시작된다.


남자 : (갑자기 목소리 톤이 확 높아지면서) "자기야~ 그러니까 자기도 지난번에 내 친구들에게....,


여자 : 자기야~ 그러니까! 자기가 잘못해 놓고 왜 아까 친구들 앞에서는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냐구!

(마찬가지로 여자의 목소리 톤이 확 높아지는데) 택시드라이버 입장에서 다투는 여자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목소리 참 이쁘다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확 높아지는 목소리가 갑자기 무서워졌다.


참고로 내 차량 문짝에는 택시운전기사 "침묵서비스" 이렇게 붙어 있다. 한 마디로 택시운전기사는 목적지 갈동안 셧터마우스 하고 있겠다고 적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감정싸움의 진동이 감지되었기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상황 정리를 위해 운을 뛰웠다.


아~~ 잠깐 손님들! 지금 감정싸움으로 가고 있어요.(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고-이거 만고 진리이다)

미안하지만 네가 잠깐 끼어들어도 되죠 하고 양해를 구했더니 젊은 남자는 구세주를 만난 양 얼른 대답한다.


내가 딸 3명을 키웠는데요. 첫 번째로 남자는 말로 절 대 여자 이기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두 분 대화가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어요.


남자는 친구들에게 여자분 칭찬을 했어요.

"내 아내가 추진력이 얼마나 좋은지 자랑했어요"

"내가 전 날 그렇게 술 먹고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끝까지 캐어해서 산에 같이 갔다 왔잖아!"

"대단한 여자야!"


남자들 세계에서 자기 아내를 대 놓고 칭찬하면 "바보"가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이렇게 자기 아내를 자랑한 것입니다.

(실상의 남자들은 같이 있는 친구들이 그저 좋기만 해서 지금 자기가 무엇을 지껄이는지 잘 모르기도 한다)


여자분은 조금 더 지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큰 아들 하나 더 키운다 생각하면 딱 맞는다는 것을요."


이렇게 아현동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5분 49초의 피아노 변주곡은 끝부분이 연주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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