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 더 버텨보자
나 "요즘 너무 바쁜 것 같아."
남편 "응. 이번주가 제일 바쁠 것 같네."
나 "나는 한 달 전부터 바빴던 것 같은데..."
남편 "실제로 바빴지."
나 "돌아오는 주말에도 행사가 있고, 그다음 주 평일도 하루 안 들어오는 거잖아?"
남편 "어. 결국 취소가 안 됐네."
나 "그런 건 도대체 왜 하는 거야?"
남편 "회사가 그렇지 뭐. 그래서 어제 영재랑 나갔다 왔잖아. 그래도 부족하지?"
나 "... 응... 나 왜 그러지?"
남편 "나도 바쁘고 싶어서 그런 거 아냐. 여보랑 잘 살려고 하는 거지."
첫째 입학식을 가던 중이었다. 차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라 짝꿍과 오랜만에 대화를 나눴다.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불만을 토로했다. 겨우 저녁밥 먹고 잠들기 바쁘다 못해 계속되는 1박 출장에 영재 봄방학까지 겹치자 신경이 곤두섰다. 나름 한 주의 루틴이었던 요가나 글쓰기를 몇 번 쉬었더니 한없이 게을러졌다. 남편이 힘들게 마련한 자유 시간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빈둥거렸다.
작년부터 책과 가까워지기 프로젝트를 했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독서의 즐거움을 알았고, 외출 가방과 침대 맡에는 항상 책이 놓이게 됐다. 11월이 되자 글쓰기와 책 읽는 장소에 대한 유튜브 영상 만들기에 도전했다. 하루라도 쉬면 안 될 것 같아 강박적으로 매일 글을 썼고, 유튜브도 매주 목요일마다 영상이 올라갔다. 한달 반 정도가 지나 남편의 겨울휴가와 영재의 방학이 연달아 찾아왔다. 기록을 깨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이런 것도 집착이라며 한 번쯤 건너뛰어도 괜찮다는 생각 사이를 오고 갔다. 마침내 쉬었다. 아쉽긴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할 때의 기분이었다. 퇴사를 만류하던 부장님을 뒤로한 채 내가 없어도 과연 괜찮을까 싶어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지만 결국은 평탄하게 회사는 돌아갔다. 한 번의 쉼은 더 많은 핑계들을 만들었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이상적이었던 일과는 사라졌다. 촬영만 하고 편집까지는 못한 영상이 핸드폰에 저장된 채 유튜브 업로드를 중지했다. 수시로 글감이 떠오르던 글쓰기는 일주일에 두 번으로 줄었다. 굳이 특별한 장소에 가지 않아도 충분했던 활동들이 이제는 어디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도 아직 붙잡고 있으니 되었다.
올해는 요가를 새로 시작했다. 한 주에 2번씩만 나가면 되는 거라 부담이 적었는데 시간이 어중간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면 시간이 조금 남고, 강습이 끝나고 씻으면 점심시간이라 한 시간 해놓고 하루가 다 지난 기분이 들었다. 결국 하루에 연달아 두타임을 하고, 이 날은 글을 쓰지 않았다.
지난주에는 어린이집 봄 방학이었다. 이런 위기가 올 때마다 규칙적이었던 하루들이 무너졌다. 문제는 곧 원래대로 시간은 돌아왔는데 무너진 습관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인데, 가족을 위해 전투적으로 살아가는 남편에게 화살을 돌린 거다.
나 "자기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니었는데, 루틴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안 지켜지니까 기분이 안 좋네."
남편 "다시 하지 않는 건 '루틴'이라고 할 수 없지. 아직 습관이 안된 거야."
나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하지?"
남편 "여보는 나약하지 않아. 약한 사람들도 습관이 되면 할 수 있어. 그저 버티는 거야."
매일 밤 상상한다. 활기가 넘치는 하루를. 등원하는 길에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독서를 하는 이상적인 시간을 내일은 보내봐야지. 근데 왜 기상 알람 소리에 눈을 뜨기도 전에 지쳐버리는 것일까. 시작도 없이 포기를 선언하는 것일까.
습관이란 뭘까, 사전을 찾아봤다.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 하는 과정에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처음에는 시도하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습관이 형성되면 노력하지 않아도 거부감 없이 저절로 하게 된다. 아직은 내가 원하는 일과들에게 시간이 더 필요한 것 뿐이었다. 괜히 사랑하는 사람 탓하지 말고, 자책하지도 말자. 물이 끓는데도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100도씨가 될때까지 천천히, 오래 버텨보자. 언젠가 나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습관이 되어 있길.
오늘부터 다시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