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초롱 Mar 28. 2024

프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것

'문제의 해결책만 있을 뿐이다

몸살이 왔다. 옆방에서 자던 둘째가 깨서 나에게 왔다. 다시 잠들기 힘든지 목이 말라, 코가 막혀, 각종 이유를 대며 뒤척였다. 슬쩍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30분. 남편이라도 잘 자라고 조용히 아이방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눕히고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잠시 침대에 기대 같이 잠들었던 것 같다. 으슬으슬 추운 기분에 일어나 안방 침대에 다시 누웠다. 달콤한 잠을 조금이라도 더 맛보고 싶었지만 울려대던 야속한 알람소리.


남편에게 찐 당근, 양배추, 사과, 토마토를 간 주스를, 둘째는 최애 달걀볶음밥을 먹여 보냈다. 주말 내내 어디가 불편한지 몸을 비틀고 소리를 지르며 존재감을 나타내던 첫째는 지쳐 잠들어 있다. 이제는 일어날 시간. 기저귀를 갈아도 세상모르고 자는 아이를 품에 안고 왼팔로 기울였다. 다리와 발바닥을 주물러가며 눈을 뜰 때마다 한입씩 입에 넣어본다. 다행히 식사와 약을 다 먹이자 돌보미 선생님이 오셨다. 영웅이를 선생님과 함께 장애인 콜택시에 태워 보냈다.


이번주부터는 다시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싶었는데 월요일부터 힘이 빠져버렸다. 빈둥거리다 마지못해 늦은 점심을 먹었다. 살기 위해 에너지를 먹는 기분이랄까. 벌써 하원시간이 다가온다. 결국 집 밖으로 나가 보지도 않고 자유시간이 끝났구나. 근데 몸이 이상하다. 뼛속 마디가 시큰거린다. 얼굴은 달아오르는데, 손이 드라이아이스 마냥 찬 기운을 뿜어낸다.


몸이 안 좋아지면 쉴 수 있는 딱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단순히 기분이 아니라 신체 기능 저하로 인한 불가항력의 사고니까. 잘됐다. 운동을 쉬었던 이유가 생겼구나.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저녁상에 올린 감자채를 미리 준비하자. 둘째가 고르게 얇은 감자를 좋아하니까 최근에 구입한 채칼의 도움을 받아 썰어본다. 마지막까지 야무지게. 앗! 쓰읍! 오른쪽 엄지 끝에 채칼이 들어갔다. 이제 겨우 첫 요리가 준비되던 참이었는데, 송글 피가 맺히기 시작한다. 쓰라린 손보다 제때 반찬들이 준비될지가 걱정이다.


하원을 했다. 평상시에는 도착하자마자 아이를 씻기는데, 이번엔 나중에 집에 올 남편에게로 미뤘다. 이틀이 지났다. 아직도 잘리다 만 살이 덜렁거리고 있다. 언뜻 보면 큰 점처럼 별거 아닌 상처인데 위치가 꽤 거슬렸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걱정하고, 못 할 변명거리를 잘 찾는 게 나다. 툭하면 몸이 안 좋아서, 첫째가 내 기분을 망쳐서, 둘째가 방학이라, 비가 와서, 우울해서, 너무 쉬었더니, 할 수 없었던 탓을 했다.


다시 저녁 준비 시간이 찾아왔다. 영재가 책에서 봤던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한다. 이번에도 핑계를 댈 거냐고? 아니다. 반창고를 붙이고, 비닐장갑을 꼈다. 때로는, 설거지할 때도 쓰지 않던 고무장갑을 오른손에만 껴가며 야채를 손질하고, 설거지를 했다. 한 끼도 봐주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 의무를 다했다. 다시마를 넣은 간장 육수에 애호박, 당근, 양파, 버섯을 썰어 넣고, 끓여둔 면을 넣었다. 남편이 먹을 다진 마늘과 파, 고추를 넣은 칼칼한 양념장도 준비해야지.


국수를 먹은 영재가 쌍엄지를 치켜올렸다. 나도 덩달아 미소 지었다. 매번 요리를 할 때마다 긴장하며 레시피에 재료 하나라도 빠지면 장을 봐오던 아마추어가 어느새 프로가 되었구나. 문제가 생기면 누구 탓을 하지 않거나 회피하기보다는 당연하게 해결책을 마련했다. 모든 게 변명일 뿐 실행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사람에게 최고의 상이 주어질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