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에게 쓰는 생일 축하 편지
내 영원한 사랑, 영재야
어린이집 잘 도착했지? 친구 생일 선물도 잘 전해주고? 이번주는 아주 신날 것 같아. 영재가 좋아하는 친구들 생일 사이로 영재까지 생일이니까 우리 서로 축복해 주자. 옷장에 친구들 선물에, 영재 꺼까지 숨겨뒀는데 어떻게 알고 하나씩 찾아내는지. “안돼~그거 도영이 거야!” 잠시 실망한 듯하다 “그럼 선물 주고, 같이 놀아도 돼지?” 박스 겉면만 맴돌다 포기하다니. 어느새 기다리는 마음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도 늘어난 걸까. 오늘 아침엔 숨겨둔 넘버 블럭스까지 찾아냈지. “이건 도영이 거야? 내 거야?” 생일 전날에 포장도 안 한 걸 찾아 신나서 물어보는 너에게 화내서 미안해.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는데 정말 아쉬웠다고. 이제 드디어 너의 생일이다!
일 년에 길어야 2주일, 봄을 알리며 온 세상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가는 벚꽃을 볼 때마다 너를 떠올려. 눈도 못 뜬 영재를 품에 안고 산후 조리원을 가던 길이였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벚꽃눈이 바람을 타고 엄마 주위를 맴돌았지. “이 아기가 당신 아이인가요?” 하늘에서조차 너의 아름다움에 반해 내게 속삭였어. 한동안 감격스러워 한 발자국 떼는 게 아쉬웠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단다.
가족과 친척 탄생일, 각종 기념일을 잊고 지나갈까 새 달력을 받을 때마다 하트를 그려 넣어. 근데 영재 생일만큼은 달력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 하늘도, 해님도, 공기도, 모든 기운이 달라지거든. 그럼 “아! 다들 영재 보러 왔구나.” 알게 돼지. 이제 밖으로 나가, 세상을 향해 한해 잘 있었냐고 맞이해 주자.
매일 샤워를 하고 욕조 위에 올라가 엄마와 비슷해진 키로 눈을 마주하지.
“엄마, 보고 싶을 거야. 이만큼 크면 헤어져야 되네.”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연락해도 돼”
“매일 보고 싶은데…”
혼자서도 흔들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컸으면 하는 바람을 너무 빨리 내비쳤을까. 요즘 들어 자주 하는 말, ”엄마랑 똑같은 사람 찾아 결혼하고 싶은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어떡하지?” 꼭 젊은 시절의 아빠가 평생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애틋하고 사랑이 절절 풍기는 표정으로 바라보지. 아직도 나를 이렇게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감사한걸. 영재는 아빠처럼 몸도 마음도 점점 커져 아름다운 청년이 되고, 더 멋진 사랑을 할꺼란다. 사랑하는 여인과 아이를 낳고, 흰머리가 나는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엄마는 지금처럼 여전히 널 사랑할 거야.
이번에 영유야검진을 했잖아. 안과에 가서 다시 시력검사를 해보라고. 검사하는 게 힘들었던 건지, 정말 시력이 나쁜 건지, 마음이 조마조마했어. 내가 아픈 건 무시하고 지나갈 때가 더 많았는데, 너의 하루는 어땠는지, 어떤 기분인지, 궁금할 때가 많아. 살아가면서 고난을 피해 갈 수 없겠지만, 지금만큼은 사랑과 행복이 충만하여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렸으면 해.
요즈음은 너의 의견이 많아진 것 같아. 놀이터에 놀러 가면 항상 달달한 간식을 챙겨주는 친구 엄마가 부럽고, 집에서는 마음껏 텔레비전도 보고 싶지. 아직은 영재가 좋아하는 대로 다 해줄 수 없단다. 엄마도 네가 기뻐하는 모습 보고 싶은데, 안 좋은 걸 알면서도 해줄 수는 없으니까. 너를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공부하고, 고민하고 있으니까 따라와 줄 수 있지?
영재가 혼자 놀고 있을 때도 엄마는 항상 너를 보고 있어. 혹시나 다치지는 않는지, 어려운 건 없는지. 그랬다가도 내가 편안해져야, 스스로 해봐야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몰래 곁눈질을 하고는 해. 아픈 형 때문에 외톨이로 자랄까 한발 나서서 친구 엄마와 친해져도 보고, 싫은 소리도 하며 적도 만들어. 너를 만나고는 한없이 약해지기도 하고, 강해지기도 한단다.
“나 보고 싶어? 괜찮아. 나는 엄마 마음속에 있으니까.” 가끔 네가 처음 뱉은 문장인데도 낯익을 때가 있어. 바로 엄마랑 아빠가 이야기했던 것들 이였지. 그럴 때면, 정말 내가 잘해야겠구나 싶어. 나부터 몸과 마음을 바르게, 건강하게 잘 살아줘야, 영재도 그렇겠지 하고 말이야. 덕분에 엄마도 같이 성장하고 싶어.
영재야, 우리 곁에 와줘서 고마워. 엄마 아빠가 외롭게 형을 돌보고 있는 게 안타까웠을까? 2년 만에 너무 쉽게 찾아와 줬지. 그래도 형만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영재에게도 많은 사랑 주고 있는 거 알지? 딱 지금처럼만 행복하자. 정말 많이 사랑해!
어린이집에서 숙제를 내주셨다. 매해 일어난 특별한 성장 과정을 한 줄씩 쓰고,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적어야 했다. 한 살 때, 두 살 때, 기기 시작하고, 말하고 등의 이야기들을 쓰는데 문뜩 자고 일어날 때마다 영재는 매일 성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기적과도 같았다. 짧은 축하 글이 아쉬워 브런치에도 흔적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