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19_굳이의 정치학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하는 사람들

by 인또삐

Prologue — “굳이라는 말의 용도

“굳이”는
질문을 막는 말이다.

논리를 부정하지 않고,
사실을 지우지 않으며,
다만 필요 없다고 처리한다.

그래서
가장 자주 쓰이는 순간은
말할 수 있을 때가 아니라
말하지 말아야 때다.


Scene 1 — 오전 10, 회의 복도

회의실 앞 복도에
사람들이 모였다.

누군가는
자료를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장견제가 먼저 말했다.

“이건
이미 정리된 사안이잖아요.”

그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정리됐다는 말은
더 이야기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Scene 2 — 회의실 , 문장

정해문 학과장은
회의를 길게 열지 않았다.

“설명회 관련해서
추가 논의할 건
없다고 봅니다.”

말은 간결했고
시선은 문서에 머물렀다.

윤사린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학생 반응도
특별한 파장은 없었고요.”

그녀는
‘파장’이라는 단어를 썼다.

문제가 아니라
확산 여부를 말하고 있었다.


Scene 3 — “굳이 등장하는 순간

한 교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원본 영상에 대한
얘기는—”

말은
끝나지 않았다.

장견제가
곧바로 끊었다.

“굳이
그걸 지금 꺼낼 필요가 있을까요?”

질문처럼 들렸지만
답을 원하지 않는 문장이었다.

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Scene 4 — 사린의 정리

윤사린은
말을 이어받았다.

“원본은
기록으로 남아 있고,
요약본은
공식 공유용이잖아요.”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역할이 다른 거죠.”

역할.

그 말은
서열을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Scene 5 — 박양이의 선택

박양이는
메모를 멈췄다.

말할 수 있는 타이밍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질문을 낳고,
질문은
굳이를 자극한다.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침묵은
동의가 아니었지만,
이 자리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Scene 6 — 회의의 결론

정해문 학과장이
회의를 마무리했다.

“그럼
이 사안은
여기까지.”

결론은
내용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회의는
정각에 끝났고,
아무도 남지 않았다.


Epilogue — 굳이를 넘는 사람들

회의가 끝난 뒤,
복도에서
짧은 대화들이 오갔다.

“괜히
일 키울 필요 없지.”
“맞아,
요즘은 다 예민해.”

굳이는
합리처럼 사용됐고,
조심성처럼 포장됐다.

하지만
굳이를 자주 쓰는 조직은
질문을 잃는다.

그리고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
정치가 남는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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