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음이라는 감정마저도 배워가는 계절, 여름

소마이 신지 <여름정원>(1994)

by 호야 Hoya


자신과 대화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 대상이 인상 깊게 본 영화가 무엇인지 물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 얼마 전, 아트 모모하우스에서 상영하는 1995년 요코하마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소마이 신지 감독의 "여름정원(1994)"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는 대형 포스터를 나누어주는데, 그것을 손에 꼭 쥐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빈 좌석에 앉았다. 한참을 가던 중에 옆자리에서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던 누군가가 슬그머니 영화 포스터를 가리키며 소마이 신지 감독을 아는지 물었다. 서로 하고 싶던 이야기가 어찌나 많던지, 결국 버스에서 내려서 연남동 갈대길 그 언저리 벤치에서 앉아 몇 시간을 이야기하고 나서야 대화가 끝이 났다. 그 여운을 이어서 받아 해당 영화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여름 방학이 찾아본 세 소년, 말라깽이 키야마(사카타 나오미), 안경잡이 키와베(오 다이키) 그리고 스모선수 야마시타(마키노 겐이치)는 청산한 아침,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진다. 사흘 만에 학교에 돌아온 야마시타는 할머니의 장례식을 보낸 후 시신이 뼛가루밖에 남지 않는 과정을 나열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들은 "내 주변에 있던 누군가가 죽는다면, 어떻게 어디로 가는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들이 살고 있는 골목 어귀에는 홀로 살고 있다는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가 죽는 순간을 지켜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으로 의기투합한다. 이토록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된 영화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여름정원.jpg

세 소년은 험난한 풀과 잡초들이 우거지게 자라난 노인의 집을 맴돌며 호시탐탐 노인을 관찰하게 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죽기는커녕 건강한 모습으로 호통을 치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외출을 하기까지 한다. 어떤 날은 마트에 가고, 다른 날은 병원에 가는데 세 소년은 계속해서 그 뒤를 쫓는다. 결국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방치되어 있던 그의 정원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뽑아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어찌나 열심히 풀들을 집어당기는지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지기까지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한참 웃음이 났다. 이 정성스러운 손길을 통해서 그의 정원 위에는 잡초 대신 코스모스 씨앗이 가득 심어지고, 깨지고 균열이 나있던 창문 유리와 지붕에 있던 집 기와들은 하늘빛을 머금게 되었다. 그러다가 더위에 지칠 때가 되면 노인은 아이들과 함께 물을 뿌리며 장난을 치거나 무지개를 만들기도 하고,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시원한 수박을 나누어 먹기도 했다. 그의 집은 점차 활기와 온기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여름정원_3.jpg


네 사람 사이에서는 혈연을 넘어선 진정한 가족과도 같은 유대가 형성되었다. 노인은 과거 필리핀 전쟁에 파병되어 참혹한 기억으로 인해 소중한 아내와 그 안에 품었던 아이를 두고 멀어졌던 기억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세 소년들의 순수함 속에 녹아들며 오래도록 마음속 깊은 곳에 봉인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아이들의 프레임을 넘어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던 역사의 증인이자, 평생 죄책감에 짓눌려 살아온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위치가 발각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현지인들을 살해했으며, 그 가운데 커다란 배를 안고 죽은 여인도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 배 안에는 자신의 아내와 같이 발길질을 하며 살아내겠다 태동하는 생명이 몸부림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죄책감이 트라우마가 되어 그를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스스로 하여금 가족과 멀어지고 외로운 말년을 초래한 근원적인 원인이었다.


여름정원_2.jpg


그렇게 온 여름을 함께 보내며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에 코스모스가 만개하기 시작할 즈음, 노인은 아이들에게 건네줄 포도를 올려놓은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죽음이라는 감정마저도 배워가는 계절, 여름",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던 할아버지와의 동행은 아이들의 마음 안에 진정한 삶의 의미를 묵직하게 담아낸다. 이는 소마이 신지 감독이 줄곧 연출해 온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이후 영화 안에 나비가 상징하는 바가 인상적으로 그려지게 된다. 평생 전쟁의 트라우마에 갇혀 살았던 노인의 영혼은 죽음을 통해서 마침내 자유를 얻는다.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서 나비가 되듯, 죽음의 끝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노인의 죽음 이후에 정원에 있던 우물에 균열이 나며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나비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게 된다.


소마이 신지 감독은 다채로운 실험과 예외성을 가득한 13편의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다. 특히, 그는 롱테이크 기법을 통해서 후술 할 특유의 디렉팅과 결부되어, 촬영의 열기 속 "자신도 컨트롤할 수 없는 순간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을 통해서 어른들이 되어서는 바라볼 수 없는 순수한 시선을 통해서 감춰진 진실을 꼬집어내기도 한다. 일본 영화에서 드러나는 연출기법은 다이내믹하고 일시적인 감각적 요소보다 잔잔한 일상 속에서 오래도록 와닿을 수 있는 진정성을 내비친다. 그래서 마음에 안온함을 남겨주는 "허니와 클로버"나 "카모메 식당"같은 영화들을 찾아서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후에 기회가 된다면 감독의 대표 작품인 "태풍 클럽"과 "이사"도 볼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 본 게시물의 2차 사용·인용은 사전 동의가 필요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_(1) 감각이 머문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