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언어가 태어나게 하는 그림
“매력적인 그림이란 그저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그 사람밖에 그릴 수 없는 그림이 아닐까요.”
하루키가 유명 작가가 되기 전에 만나 35년간 환상의 콤비를 이루며 하루키 신드롬을 만들어내는 데 일 공신이었던 안자이 미즈마루. 안자이 미즈마루가 없는 하루키는 상상할 수 없다. 1981년 하루키의 단편 소설 〈거울 속의 저녁노을〉에 들어갈 삽화를 맡아 그리면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2014년 미즈마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름답게 지속되었다.
안자이 미즈마루가 그린 그림을 처음 보면 그리다 만 그림 같기도 하고, 대충 그린 것 같기도 하다. 그의 그림은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만화가 이우일 씨에 따르면 안자이 미즈마루는 “슬슬 그림의 대가”. 미즈마루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는 뭔가 깊이 생각해 쓰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대충 한 게 더 나은 사람도 있다고. 대충 한 것이 그렇게 새롭고 편안하고 유머러스하고 친근하며 독창적일 수 있는 데 그의 재능이 있는 것이니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서른둘에 잡지에 만화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하였던 미즈마루는 소설도 쓰고, 번역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화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하였고, 술을 즐기는 만큼 노는 일에도 무척 열심이었다고 한다. 참으로 행복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하루키 소설《중국행 슬로보트》 표지 작업으로 일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되었는데, 아쉽게도 안자이 미즈마루의 낯설고 독창적인 표지가 아니라 우리나라 독자층의 취향에 맞춘 표지이다), 달리는 하루키의 모습을 그만의 스타일로 그리는 등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간 미즈마루의 비결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하였던 것. 잘 그린 그림이나 대단한 그림이나 훌륭한 그림이 아니라 ‘좋은 그림’을 지향했던 미즈마루는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자신다워지는 일이고 행복한 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소설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만나 이토록 멋진 창조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사례는 앞으로 나오기 힘들 것이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작품들을 보면, 하루키가 미즈마루를 만나지 못했다면 재즈카페를 하는 재즈 좋아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수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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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주세요. 자신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을 찾으면 됩니다. 찾거든 그 소중한 것을 위해 노력하세요.”_구로자와 아키라 영화 ‘마다다요’ 가운데
미즈마루는 자신이 “좋네” 하고 생각하는 그림을 “좋네”하고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려서 “좋네”라는 생각이 들 때 마무리했습니다.
그의 그림이 가벼운 건 말이지, 미즈마루는 의식적으로 그림에서 설명을 빼려고 했기 때문이지. 설명이 된다고 생각한 순간에 그 선을 지워버려. 그걸 감각으로 할 수 있는 힘, 즉 센스가 있는 사람이었어. 보통 일러스트레이터는 기초가 중요하지만, 기초 없이 그만큼 인기가 있고 일을 많이 하고 생활이 돌아갔던 사람은 드물어. _ 편집디자이너, 아트디렉터 신타니 마사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