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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Mar 13. 2024

게 눈 속의 연꽃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즈 섹션 상영작〈오키쿠와 세계〉

게 눈속에 연꽃은 없었다

보광(普光)의 거품인 양

눈꼽낀 눈으로

게가 뻐끔뻐끔 담배 연기를 피워올렸다

눈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연꽃을

게는, 그러나, 볼 수 있었다

_‘게 눈 속의 연꽃’



영화전문잡지 <키네마 준보(キネマ旬報)>가 선정한 2023년 최고의 일본영화〈오키쿠와 세계〉.  일본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키네마 준보>는 매년 그 해의 영화 ‘베스트 텐’을 발표한다. 2023년 <키네마 준보> 선정 ‘베스트 텐’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작품이 선정되었는데,〈오키쿠와 세계〉가 ‘베스트 텐’ 가운데 최고의 영화로 뽑혔다.   

  

이런 사실만으로 영화를 마주한 사람들은 미처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차고 넘치도록 등장하는 것이 누구나 기피하는 인간의 배설물이라는 사실을. 영화를 보면서 다시 놀랐다. 기피 소재를 정면돌파하며 감독이 보여주는 ‘세계’에 관한 시선이 너무나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영화 포스터에 등장하는 스틸 컷은 감독이 영화에서 말하는 핵심 컨셉을 담고 있다. 똥푸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야스케와 츄지 그리고 몰락한 사무라이의 딸 오키쿠가 비를 비해 변소 앞에 서 있는 장면.     


영화의 배경은 에도 시대. 수세식 화장실 시대 인간의 배설물은 기피 대상이지만 당시 똥은 사람들이 먹을 작물을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거름이어서 돈을 주고 사야 했다. 똥푸는 일을 하는 야스케는 더러운 똥을 힘들게 퍼주면서 똥 주인(?)에게 값을 지불한다. 값을 지불하고 획득한 똥을 고이 운반해 시골 농사꾼들에게 팔아서 생계를 이어간다.     

 

영화에서 ‘똥’은 사회의 평등과 차별을 동시에 담고 있는 물질이며, 바로 인간이 만들어가는 세상에 대한 거대한 비유이다. 인간은 누구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먹어야 살 수 있고, 먹은 것을 소화하여 내보내야 살 수 있다. 이것이 ‘똥’이 내포하는 ‘평등’이다. 하지만 인간은 똥을 천대하고 기피하기 때문에 똥푸는 일을 하는 사람은 사회 가장 밑바닥에 자리잡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가진 것도 없고 가족도 없이 맨몸 하나로 세상을 뚫고 가야 하는 야스케와 츄지 같은 사람들.      


하지만 야스케는 자신이 먹고 살기 위해 다루어야 하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인간의 배설물에 대해 스스럼없이 대하고 만지고 소중하게 다룬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의 본질을 정직하게 꿰뚫고 있다.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를 잃고 겨우 살아남지만 말을 할 수없게 된 오키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오키쿠에게 찾아온 츄지에 대한 마음. 츄지를 위해 밥을 지어 주먹밥을 고이 만들어 그의 집을 찾아가는 오키쿠의 마음에는 모든 것을 할퀴고간 불행을 간신히 이겨나갈 사랑이 담겨 있다. 분뇨 냄새가 남아 있는 츄지를 스스럼없이 껴안는 오키쿠의 마음을 받아든 츄지는 오키쿠에게 손짓 발짓으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이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고. 츄지가 그렇게 손짓 발짓으로 고백하는 것은 말하지 못하는 상대방의 입장과 똑같이 서 있겠다는 마음이다. ‘나’와 ‘당신’의 ‘다름’을 ‘같음’으로 만드는 행동이다. 사랑의 마음이다.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서른 번째 작품인〈오키쿠와 세계〉는 ‘게 눈 속의 연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게 눈 속에’ ‘연꽃’은 없지만,  ‘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연꽃’의 모습을. 


똥으로 가득찬 세상, 자신 안에 있는 더러운 똥을 사람들은 경멸하지만 똥은 우리 자신의 일부이다. 똥은 우리 생명활동의 가장 기초를 이루는 것이며, 인간 존재와 뗄 수 없는 우리의 일부이다. 똥이 없는 인간은 없는데 인간은 똥을 경멸한다.〈오키쿠와 세계〉는 바로 사람들이 기피하고 경멸하는 우리 존재의 가장 근원적 기초를 이루는 물질을 통해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진흙탕 속에서도 피어나는 연꽃 같은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쿠로키 하루가 ‘오키쿠’ 역을 맡았다. 그녀가 연기하는 인물에는 섬세한 감정의 숨결이 들어 있다. 키키 기린과 함께 나오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도 좋았고, 요리 드라마 ‘정성을 다해 요리첩’에 이르러서는 그녀가 연기하는 인물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수많은 장면이 똥으로 가득 채워지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시적(詩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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