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름의 역사_벌레 편

말벌부터 지네까지 다 있습니다.

by MJ


할머니 집에 소방관 두 분이 오셨다. 말벌이 자꾸 출몰해서 불안해진 내가 119에 전화를 건 것이다. 방충망 사이에 죽은 말벌이 끼어있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 창문 근처를 붕붕 날아다니거나 이층 천장 구석에서 붕붕 날아다니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어딘가에 말벌 집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론적으로 말벌집은 없었지만 잊을만하면 한 두 마리씩 출몰하는 말벌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그럼 벌은 누가 잡느냐. 우리 집 유일한 남정네, 할아버지가 잡으신다. 팔순이 훨씬 넘은 나이지만 엄마가 벌레를 보고 “꺅! 아빠~ 벌레 벌레!”라고 하면 어디선가 에프킬라와 기다란 빗자루를 들고 나타나시는 것이다. 천장에서 붕붕거리는 말벌을 잡으려고 식탁 의자를 가지고 오셔서는 “방에 들어가 문 닫고 있어라!” 외치시며 말벌을 향해 에프킬라를 분사하시던 아주 멋있는 그 모습을 나는 존경한다. 50대의 엄마와 80대의 할아버지이지만 영락없는 든든한 아빠와 귀여운 딸인 것이다.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스럽긴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식탁 의자가 흔들리지 않게 잡아드리는 것 정도? 하하.

할머니 집은 바닷가 마을이라 습해서 그런지, 산 바로 아래에 있어서 그런지 벌레가 참 많다. 개미, 모기, 파리, 말벌, 그냥 벌, 슬슬 이(돈벌레), 지네까지. 며칠 전에는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한 박스 사 왔는데 그 안에서 지네가 발견되었다. 엄마가 발견했는데, 우리 엄마가 벌레를 보고 그렇게 몸서리치는 건 처음 보았다.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상자를 가지고 나가서 지네를 잡으셨는데, 과연 몸서리쳐질 만큼의 크기였다. 상자를 뒤집으니 성인 손바닥 길이의 지네가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가 슬리퍼 한 짝을 움켜쥐시고 지네를 때려잡으시는 모습에 다시 한번 존경심이 가득. 십 개의 주홍빛 다리를 떨며 버둥거리던 지네의 모습은... 윽, 여기까지만 설명하겠다.

생각해 보니 십여 년 전 그해 여름 방학 때도 유독 지네가 말썽이었다. 큰 지네 작은 지네, 거짓말 안치고 어른 손바닥만 한 길이, 아이 손가락만 한 작은 지네까지. 물릴까 봐 무서운 것도 있지만 일단 지네는 생김새부터가 아주 공포스러웠다. 거실에서 불을 끄고 텔레비전을 보던 어느 날 밤에는 텔레비전 장 아래에서 스르르 기어 나와 곡선을 그리며 다시 사라지는 지네를 보고 기겁했던 적이 있다.

공포심이 아닌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벌레는 단연 파리이다. 올해는 전기 파리채를 샀는데, 다이소에서 5천 원짜리 전기 파리채를 샀더니 버튼만 눌러도 자꾸 타닥타닥 소리가 나서 난 졸지에 필승의 벌레 사냥꾼이 되어버렸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또 잡았냐고, 잘 잡는다고 할머니가 감탄하시는데 이거 정말 너무 웃기다. 아니, 전기 모기채를 들고 펄쩍거리면서 뛰어다니는 서른이 넘은 손녀를 보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웃겨하셨을 것이다. 내년에는 고성능 전기 모기채를 하나 더 장만해 와야겠다.

바닷가 마을의 손주라면 벌레 따윈 두려워하지 않아야겠지? 생각하며 한층 더 강해질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