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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라토너가 기안 84에게 전하는 글

42.195의 진짜 매력

기안 84가 기여한 마라톤 붐이 한창이다. 기안 84가 지난 이맘때쯤 풀코스를 완주하는 모습이 모 프로그램에서 방영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그로 인해 달리기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리고 이번 뉴욕 마라톤 완주는 그 후속편쯤 되었을 것이다. 첫 마라톤에서 힘겨웠지만 끝까지 완주한 그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기에, 이번에는 어떤 드라마를 보여줄지, 마라톤을 즐기는 러너로서 이번 방송이 매우 기대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이었다.

그것은 그의 기록 때문이 아니었다.

우선, 뉴욕마라톤이라는 마라톤 축제에 참여하는 자세가 안타까웠다. 세계 6대 마라톤은 대부분의 마라토너가 평생에 한 번 가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행운이다. 그런 축제에서 한 번도 달성해보지 못한 기록인 서브 4(4시간 이내 완주)를 해보겠다고 결의를 다지는 것, 그 자체가 안타까웠다. 만약 정말로 서브 4를 달성해보고 싶었다면 지난 1년 동안 국내의 여러 대회에서 풀코스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쌓아보고 경험 해보았어야 했다. 그렇게 사전 게임에서 서브 4를 달성한 경험이 있어야 외국에 나가서 장시간의 여행과 시차를 극복하고도 원하는 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베이글을 두 개나 먹고 웜업은 커녕 길에 대충 누워 잠을 자다가 배가 아파 주로에서 토하기까지 하는 모습은 정말로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그동안 마라톤 대회 경험이나 장거리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훈련을 충분히 했다면 몇 시간 전에 어떤 음식을 어느 정도 먹어야 할 지 알 수밖에 없다. 뉴욕 마라톤이라는 마라톤 축제에 와서 정작 즐기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운데 토하고, 길에 쓰러지고. 한 마디로 지옥체험을 하고 있는 기안 84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가 방송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마라톤을 뛰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도 되었다. 장거리 훈련도 제대로 안 하고(혹은 못하고) 그저 뉴욕마라톤 서브 4라는 TV쇼에 맞춰 자신을 억지로 끼워 넣은 건 아닐지 말이다.

하지만, 사실 대중들이 기안 84에게 열광하는 것은 그의 그런 모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해서 발전하는 모습을 기안 84에게 기대하는 것을 아닐 것이다. 오히려 기안84의 스타일, 남들의 가르침이나 마라톤 훈련 공식 등은 무시하고 자기 스타일대로 밀어붙이는 투박한 스타일. 그렇게 실패하고 좌절하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에서 대중들은 신선함을 느끼고 매력을 느끼는 것일 것이다. 기안 84를 영입하고자 했던 마라톤크루나 러닝코치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그럼에도 그는 고집대로, 본인 스타일대로 했을 것이다. 그게 그의 매력임을 그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그의 두 번째 마라톤이자 세계 6대 마라톤인 뉴욕마라톤에서 그가 보여준 이번 경기는 지난 대청호 마라톤이 그저 뉴욕 마라톤이라는 배경만 업그레이드 되었을 뿐 내용은 재탕이었다고 여겨진다. 재탕이면 어떻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지만,  재탕이 된 이유가 그가 마라토너로서 한 걸음의 성장도 하지 못해서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특히 마라톤을 향한 진정성있는 애정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보이기에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그의 첫 마라톤은 완주만으로도 의미가 있었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두 번째 마라톤에서도 처음과 비슷한 모습의 재탕은 재미도 덜하였지만 감동은 더군더나 없었다.


 42.195km를 달린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다. 하지만 마라토너들은 그 쉽지 않음을 매력으로 느낀다. 그 긴 거리를 고통 없이 달려낸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그날을 대비하여 훈련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은 인생과 같아서 막상 대회날이 되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마라톤의 매력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마라톤이 궁금한가?

마라톤의 진짜 매력은 대회 날 서브 4를 하는 것, 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라톤의 진짜 매력은 그 대회를 위해 일상 속에서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매진한 모든 훈련, 나를  이겨낸 그 모든 과정 속에 있다.

기안 84도 비록 대회에서는 지옥 체험을 했겠지만, 그 모든 준비 과정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렸기를 바란다. 그 과정이야말로 진짜 마라톤 42.195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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