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먹는 것에 대한 의학적 고찰
지난 주말에는 오래 미뤄두었던 장거리 달리기를 하였다. 30km를 3시간 동안 달리기였다. 새벽 4시에 시작해서 7시에 끝을 내고 시원한 얼음물을 마실 때에는 기분 좋은 성취감만 있었다. 유난히도 더웠던 올해 여름에 장거리 달리기를 번번이 포기하곤 했기에, 이번에 성공한 것이 너무나도 뿌듯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 후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잠시 쉬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더 피곤하고 무엇보다 두통이 시작되었다. 뭘 하든 어지럽고 일상생활도 버겁게 느껴지는 무력감이 지속되어 하루 종일 병든 닭처럼 누워있다시피 하루를 보냈다.
“아, 내가 더위를 먹었구나!”
더위를 먹는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말일까? 물론 그렇다. 더위를 먹는다는 말은 열 관련 질환에 대한 매우 광범위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열 관련 질환은 그 정도가 비교적 가벼운 증상부터 생사를 가르는 질병까지, 매우 광범위한데 열피로의 범주에 들어가는 질환에 대해 알아두는 것은 한여름에도 훈련을 게을리할 수 없는 러너라면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가장 경미한 증상으로는 열실신을 생각할 수 있다. 더운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말초 혈관이 확장되고 뇌로 가는 혈류가 일시적으로 감소하여 갑자기 실신하거나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어지러움을 느끼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맥박이 약해지는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열경련은 더운 환경에서 땀을 많이 흘리게 되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데 나트륨 등의 전해질이 소실되어 근육 경련이 생기는 것이다. 흔히 복부, 팔, 다리 등에 통증성 경련이 생기는데 러너들의 경우엔 한여름에 마라톤 대회를 달리게 되거나 한낮에 무리하게 길게 달리게 되면 이러한 증상이 생길 수 있다.
열실신이나 열경련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참고 견디면 더 위험한 상황으로 잔행 할 수 있는데 체온이 상승하고 탈수와 전해질 불균형이 심해지고 땀이 많이 나며 어지럽고 두통 등이 생기면서 맥박이 빨라진다. 이러한 상태를 열탈진 상태라고 하는데 이를 방치하면 열사병으로 진행하여 사망위험이 있으므로 결코 참고 견딜 증상이 아니다. 열사병은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상승하면서 중추 신경계 이상이 동반되어 의식저하가 동반된다. 이때는 오히려 땀이 나지 않고 몸이 뜨거운 상태가 된다.
대회를 앞둔 러너들이 이 정도 더위는 참고 견뎌야지 하며 다소 힘들더라도 훈련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건강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도 달릴 때는 잘 몰랐지만, 집에 돌아와서 하루 종일 두통과 어지럼증을 느꼈다. 참고로 두통은 더위를 먹었을 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라 할 수 있는데 의학적으로 얘기하자면, “초기 열탈진상태” 의 일부 증상이거나 혹은 “경미한 열 스트레스”라고 볼 수 있다. 흔히 더위 먹었다고 하는 경우, 체온은 크게 오르지 않았으나 체내 수분과 전해질이 부족하면서 두통, 어지러움, 기운 없음, 약간의 메스꺼움 등을 느끼는 경미한 초기 상태를 말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경우에는 수분과 염분을 보충하고 휴식하면 빠르게 회복이 된다.
참고로 두통이 잦은 이유는 뇌는 수분변화와 체온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므로 열로 인해 혈관이 확장되거나 탈수로 뇌막이 긴장되면 두통이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체온 조절 중추인 시상하부가 과부하되면서 두통과 피로가 동반될 수 있다.
냉방병의 한 증상으로도 두통이 흔하게 발생하는데 그 원인은 뇌혈관이 기온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긴장성 두통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내외 온도차가 5도 이상으로 크게 되면 자율신경계의 혼란으로 이러한 증상이 더 심해질 수 있고 피로, 무기력, 소화불량 등의 증상도 생길 수 있다.
올여름은 정말 잔인할 정도로 더운 것 같다. 특히나 대회를 위한 훈련에 매진하는 러너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강한 러너가 되기 위해 끝까지 달리는 러너만이 진짜가 아니다. 멈출 때는 멈출 줄 알아야 진짜로 강한 러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록을 향한 굳은 의지로 해낸 훈련이 오히려 몸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내 몸에 집중하며 건강하게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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