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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것이 융합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이 영화는 나의 중학생 시절, 참 좋아했던 영화.

참 일관된 영화취향이네.

동명의 소설이 요즘 시대엔 더 유명할 지도 모르겠다.

둘 다 읽어본 나로서는 이 영화가 더 좋다.

나이가 들어 좋은 건 없지만,

중학생 때는 보지 못한 점을 이제는 볼 수 있게 된 게 좋은 거라 할 수 있을지. 영화를 보며, 중학생이었던 과거의 나는 이 영화를 볼 때 두 형제만을 바라보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 다시 보니 한 사람의 일생이 보이고, 형제의 유년기와 그들을 키우는 부모가 보이고, 그 모든 것들과 별개로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어주는 자연이 보인다.

새삼스레 영화 줄거리를 요약하고 싶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감동을 몇 줄로나마 쓰고 싶어서이다.


자연과 함께 커가는 형제의 유년기.

부모의 품 안에서, 부모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던 형제의 유년기. 아버지로부터 낚시를 배우고 자연과 함께 커간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코 끝이 뭉클해지는 그들의 유년기의 모습. 나도 나의 유년기가 생각났다. 세 자매로 자라며, 부모님의 품 안에서 저녁이면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지금의 나보다 더 젊으셨을 우리 부모님. 부모님 생각에 더 뭉클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에게서 플라잉 낚시를 배웠지만, 형인 노먼과 달리 동생 폴은 자기만의 스타일대로 본인만의 낚시를 한다. 아직 잡지 못한 수많은 물고기를 두고 떠날 수 없다며 고향에 남은 동생 폴과 달리, 형 노먼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어 더 깊은 문학 공부를 하기 위해 도시의 대학으로 떠난다.


나는 대학을 다니는 내내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폴도 기자로 취직을 하고
점점 가족과 멀어져 갔다.

형제는 어른이 되었고, 부모님과 물리적으로 멀어지고

더 이상 부모님에게 인생의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게 된다. 유년기를 함께 보낸 집은 이제 손님처럼 가끔 가는 곳이 되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 결국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이 완성되어 부모를 떠나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순리이다.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영화에서도 보인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형 노먼. 형제는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 낚시를 하러 간다.


동생 폴은 어릴 때 기질 그대로 강인한 남자로 성장했다. 그의 낚시는 예술 그 자체였다고 형 노먼은 말한다.


​은혜는 예술을 통해 오고,
예술은 쉽게 오지 않는다.

동생 폴은 낚시를 예술로 승화시킴으로써, 이 소설에서 은혜라고 표현된 삶을 완성한 것이 아닐까.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솜씨로 월척을 낚은 폴의 행복한 순간.
그러나
인생은 예술작품이 아니기에
이 순간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강은 쉬지 않고 흐르며

각자의 물줄기 대로 갈라져 흐른다.

그렇듯 우리 삶의 행복한 순간도 머무르지 못하고, 각자의 운명대로 갈라져 흘러가는 것이라고 이 영화는 말하고 싶은 것일까?


동생 폴은 끝내 도박을 끊지 못해 거리에서 손이 으스러진 채로 권총에 맞아 죽고 만다.

아버지는 이 후로도 노먼에게 동생의 죽음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 그리고 이 한 마디를 끝으로 더 이상 폴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


또 하나 더 있지.
그 아이는 아름다웠어.

목사였던 아버지의 임종 전 마지막 설교를 들어보면, 아버지의 마음속에 평생 폴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사랑하는 이가

곤경에 처한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주여 저 사람을 도우려 하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이를 돕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주려던 것을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오롯이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가족만이 가능한 사랑 아닐까.

아버지는 폴의 비행을 알고 있었지만, 도울 수가 없었다. 평생 마음속에 품은 못다 한 사랑이었다.



노먼은 이제 예전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이 들어 고향에 내려와 낚시를 하며 강물을 바라본다.


살면서 내가 이해하진 못했으나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모두 내 곁에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나는 여전히 그들과 교감한다.

​결국, 모든 것이 융합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 #흐르는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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