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잔 Dec 03. 2023

나를 살게 하는 것들

#1. 나는 오늘 피곤해서 살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 각자가 해석하는 삶의 의미는 다 다르겠지만, 나는 호흡할 수 있음에 큰 의미를 둔다. 내 주변에 있는 가족과, 친구와, 자연과, 도시의 수많은 것들과 호흡하며 살고 있다. 고로 내가 존재하는 시간과 장소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살게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나로부터 발산되고 나에게 집결된다.

살아가다 보면 많은 것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중 가장 놓치기 쉬운 것이 바로 '나'다. 나를 놓치면 나를 살게 하는 모든 것들을 놓치게 된다. 반대로 내 주변의 것들을 놓쳐도 결국 나를 잃는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선 함께 호흡하는 것들과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을 주제로 글을 연재하기 위해 나는 앞으로 나의 일상을 조금 더 깊숙이 관찰할 것이다. 나와 함께 호흡하는 것들에게 말을 걸어볼 것이다.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와 같은 평가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무엇 때문에 살 수 있었는지를 돌이켜 보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의 나는 피로감 덕에 살 수 있었다. 매일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에는 나의 발전을 위해 시간을 쓰는 삶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별생각 없이 유튜브를 보거나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는 시간이 어색할 지경이다. 빈둥거리는 행위 자체가 계획적인 행동이 되고 그것은 곧 부담으로 다가왔다. 내 평균적인 일주일 루틴을 돌이켜 봤을 때, 머리를 쉬게 해주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 되짚어봤다. 충격적 이게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단 1분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 머리는 나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수많은 콘텐츠로부터 얻은 도파민 중독으로 인해 쉼 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환기를 위해 시청하는 유튜브 콘텐츠도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다. 결국 복합적으로 축적된 정신적 피로감으로 인해 내 머릿속엔 막연한 먹구름만 잔뜩 끼게 됐다. 어떻게 하면 이 먹구름을 없앨 수 있을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은 자욱했기 때문에 해답이 나올 리가 만무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이 몽롱하고 귀찮은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었다. 알찬 주말을 보내기 위해 병적으로 외출 목적지를 정하기보단 그저 집에서 몸이 반응하는 대로 쓰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내가 한 것은 늦잠자기, 어제 먹다 남은 푸딩 먹기, 또 누워있기, 엄마가 해준 수제비 먹기, 고장 난 애플워치를 찾다가 귀찮은 나머지 다시 누워버리기, 일어나서 게임하기, 피곤하니까 다시 눕기, 치킨 먹기, 졸려서 조금 잤다가 산책 갔다 오기가 전부다.

여전히 나는 졸리다. 하지만 졸린 것에 대해 별다른 느낌이 없다. 이미 오늘 하루를 이렇게 보냈기 때문에 남은 시간에 대한 미련이 없다. '내일의 나는 또 열심히 살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들뿐이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주말일 수 있지만, 나에겐 몇 달 만에 보내본 특별한 하루였다.

나는 오늘 피곤해서 살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날 것과 진심이 만나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