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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짓는사람 Oct 21. 2023

집의 의미

스스로 지은 작은 집만이 가질 수 있는 의미들.

살아오면서 많은 집들을 거쳤다. 건축업을 하셨던 아빠 덕에 꽤 넓은 집에도,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근사한 집에도 살아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삶 속에서 크게 남아있는 집은 없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집도, 정든 집도, 추억을 지닌 집도, 딱히 없었다. 독립을 한 이후에도 그랬다. 처음 독립을 한 후 몇 번 이사를 다녔지만 그때도 온전히 나의 집에서 편안했던 적은 없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기에 집이 소중했던 것이지 집 자체가 나에게 의미 있진 않았다.


여태껏 살아왔던 집을 차근히 되짚어보았다.

부족함 없이 넓었지만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는 것 같았던 집.

고급스럽고 멋진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지만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숨 죽이며 들어오던 차가운 집.

들어설 때마다 답답함이 밀려왔던, 내 몸 하나 간신히 누일 수 있는 방보다 작은 집까지.

집은 때로는 공허함이 되고, 쓸쓸함이 되고, 서글픔이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집의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지었기 때문일까.

편안함, 자연스러움, 뿌듯함, 그리움, 행복, 익숙함, 기쁨, 성취감, 시작, 회복, 포근함, 사랑, 안식처, 고향, 애틋함…

나에게 이 집은, 집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의미의 총체가 되어 주었다.

옛날 집의 1/10도 되지 않는 크기의 6평짜리 작은 집이지만, 집의 구석구석 모든 곳이 꼭, 내가 있을 곳처럼 느껴졌다. 내 방에 있어도 늘 불안했던 과거의 집과는 달리, 나는 작고 좁은 계단 한켠에 앉아서도 완벽하게 편안했다. 고급스러움과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하고 수수한 이 집의 인테리어는 이전 집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던 차가운 대리석 감촉과는 달리 포근하고 따듯했다. 나는 이제야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집에 있으면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졌다.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여야만 할까. 그리고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까지 줄 수 있을까.

나는 종종 집의 의미에 대한 나의 생각과 바람, 가능성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곤 한다.   

‘작은 집에서도 충만할 수 있구나’

‘소박한 집에서도 풍요로울 수 있구나’

지으면서도, 살면서도 집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 하나씩 발견해나가고 있다.

집의 크기와 물질적 가치와는 전혀 무관한  집에서 이토록 많은 의미를 찾아낼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집이   자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도 모른 채로 나는 집을 짓고, 집은 나를 지으며 그렇게 사계절을 온전히 함께 지냈다. 그랬더니  시간이 그대로 집이 되었고,  내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오롯이, 집의 의미가 되어주었다.


스스로 지은 작은 집. 내 영혼과 닮아 있는 집에서 나는 가장 나답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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