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지은 작은 집만이 가질 수 있는 의미들.
살아오면서 많은 집들을 거쳤다. 건축업을 하셨던 아빠 덕에 꽤 넓은 집에도,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근사한 집에도 살아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삶 속에서 크게 남아있는 집은 없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집도, 정든 집도, 추억을 지닌 집도, 딱히 없었다. 독립을 한 이후에도 그랬다. 처음 독립을 한 후 몇 번 이사를 다녔지만 그때도 온전히 나의 집에서 편안했던 적은 없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기에 집이 소중했던 것이지 집 자체가 나에게 의미 있진 않았다.
여태껏 살아왔던 집을 차근히 되짚어보았다.
부족함 없이 넓었지만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는 것 같았던 집.
고급스럽고 멋진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지만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숨 죽이며 들어오던 차가운 집.
들어설 때마다 답답함이 밀려왔던, 내 몸 하나 간신히 누일 수 있는 방보다 작은 집까지.
집은 때로는 공허함이 되고, 쓸쓸함이 되고, 서글픔이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집의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지었기 때문일까.
편안함, 자연스러움, 뿌듯함, 그리움, 행복, 익숙함, 기쁨, 성취감, 시작, 회복, 포근함, 사랑, 안식처, 고향, 애틋함…
나에게 이 집은, 집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의미의 총체가 되어 주었다.
옛날 집의 1/10도 되지 않는 크기의 6평짜리 작은 집이지만, 집의 구석구석 모든 곳이 꼭, 내가 있을 곳처럼 느껴졌다. 내 방에 있어도 늘 불안했던 과거의 집과는 달리, 나는 작고 좁은 계단 한켠에 앉아서도 완벽하게 편안했다. 고급스러움과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하고 수수한 이 집의 인테리어는 이전 집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던 차가운 대리석 감촉과는 달리 포근하고 따듯했다. 나는 이제야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집에 있으면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졌다.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여야만 할까. 그리고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까지 줄 수 있을까.
나는 종종 집의 의미에 대한 나의 생각과 바람, 가능성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곤 한다.
‘작은 집에서도 충만할 수 있구나’
‘소박한 집에서도 풍요로울 수 있구나’
지으면서도, 살면서도 집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 하나씩 발견해나가고 있다.
집의 크기와 물질적 가치와는 전혀 무관한 이 집에서 이토록 많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이 집이 곧 나 자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도 모른 채로 나는 집을 짓고, 집은 나를 지으며 그렇게 사계절을 온전히 함께 지냈다. 그랬더니 그 시간이 그대로 집이 되었고, 곧 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오롯이, 집의 의미가 되어주었다.
스스로 지은 작은 집. 내 영혼과 닮아 있는 집에서 나는 가장 나답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