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way ticket prject #02 여행의 준비
지금으로부터 반년 전 그날 밤,
그토록 지독하게 떨쳐내지 못하고 있던, 감기와 같이 지긋지긋하게 달며 살고 있던
원인불명, 처방불명의 고통,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세상에서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불현듯 떠오른 나는 알게 되었다.
' 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는 것에서 계속 무리하게 욕심을 내고 있었던 거구나...
그러다 보니 어떠한 결론도 낼 수 없는 그런 힘겨움에 시달리고 있었던 거였어. '
주변에서 워커홀릭이라 불리울 정도로 몰두해온
지난 14년의 시간을 정리하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한순간에 내려버린 후 6개월,
출발 날짜를 정하고, 항공편을 구매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씩 준비해 가고,
앞으로 갈 곳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서도
사실 이 날이 정말 오게 될 것이라고는 별로 실감하지 못했다.
그냥 아침이 되면 출근을 하고, 식사 때가 되면 밥을 먹고, 하루가 끝나면 집에 돌아오는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패턴처럼
어느새 여행 준비도 나의 일과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날 밤이 되어 배낭 속에 마지막 짐을 구겨 넣으며
지금까지의 모든 준비는 진짜였고 오직 내일을 위해 보내온 시간이었음이 깨달아지는 순간
나에게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묘한 감정의 파도가 몰려왔다.
드디어 그날이 정말 오기는 온 것이다.
지금까지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중요한 한 가지를 배우며 이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욕심을 버리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 다녀오는 것이 아닌 만큼 필요해 보이는 것도 많고 가져가야 할 것도 많았지만,
그 모두를 챙겨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욕심을 부리는 만큼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는 나를 짓누를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부리는 욕심은 그만큼 나를 힘들게 할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버리는 방법부터 익혀야 했다.
그래서 몇 번이고 곱씹고 다시 생각하며 추려내고 버렸다.
하지만 이제 출발을 몇 시간 앞둔 지금
배낭 속에 짐을 넣으며 나는 아직도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지나친 과식으로 인해 토해져 나와 있는 배낭 옆 많은 물건들을 보며,
대체 그동안 내가 욕심을 버리기는 한 것인지 헛웃음만 나왔다.
그렇게 지난 몇 달 동안 수없이 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되던 여행 짐 싸기는
늦은 밤까지 싸고 풀고를 반복하고 있는 바보 같은 모습에서
아무 부질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D-1] 2018.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