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놀이가 아닐까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 능력이 있는데도 이를 의무와 책임으로 치환하지 않고 삶을 내버려두는 일은 죄악이다. 다르게 말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무능력은 안타깝고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늘 고민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나는 얼마나 강해질 수 있고, 동시에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지.
한계를 직접 목격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자존감은 바로 그 때에 무너진다. 불가항력의 어떤 사건에 내던져지는 그 순간 정신과 자아는 죽어버린다. 그건 자살이다. 진보하고 성장하며 발전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가치이기에, 멈춘다는 것은 종말과 소멸을 뜻할 터이다. 그렇게 마음은 죽어간다. 천천히, 오랜 시간동안 ‘나’라는 인간의 내면은 무너지고 으스러지는 것이다.
껍데기만 남은 몸뚱아리가 원초적인 본능을 쥐어짜내 삶을 유지한다. 배고픔. 고통. 피로와 두통. 죽지 못해 살고있는 삶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대체 몇 번을 실패했을까. 굳은 다짐을 새겼지만, 칼을 드는 순간에는 주저하게 된다. 밧줄을 사 두고 매듭법까지 공부했지만 차마 거기에 내 목을 걸지는 못했다. 두려움에 잡아먹혀 안식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의 죽음에 대한 회피는 비난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조차도 마주할 힘이 나에게는 없다. 살아갈 자신이 없기에 내면을 죽였고, 다가오는 아픔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어서 차마 숨결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진정으로 살지도 죽지도 못한 나를 향한 손가락질은 너무나도 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