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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Oct 12. 2024

귀향길

살아감에 눈물짓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숨통이 조여온다. 이것은 두려움일까. 두려움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것을 깨부수고 난 뒤에 나를 환영하는 어떤 것을 갈망한다는 뜻이다. 몸을 풀고 팔다리를 움직여본다. 숨이 차오름을 그대로 느끼며 외친다면 그것이 자유이므로, 아, 나는 탁 트인 광장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검은 먹물로 생살을 도화지 삼아 새기고자 하는 날짜가 있다. 내 생의 비극이며 동시에 내가 그리도 원하였지만 알지 못하고 눈을 돌렸던 것. 뒤돌지 않고 대가리를 치켜들어 드디어 똑바로 바라본 곳에 어제의 내가 있으려나. 조여오는 가슴은 뜨거움을 견디며 양 손으로 틀어쥔 것을 내다버리라며 겁박한다. 그렇다면 나는 연민에 기대 살아가야만 하는가.


  다만 사라지는 것이 싫어서 붙들었던 무형(無形)의 통나무 기둥은 당찬 걸음을 무너뜨린다. 끝에는 나를 집어삼키고야 말 늪에 발을 담구어버렸지만 가라앉을 자신은 없어 발버둥침은 마치 하나의 그림과도 같다. 실존의 한가운데가 비어있다면 어두운 밤에 나는 등대를 보며 따라가지는 않으며, 바닥을 긁어내 먼지로 덮인 환한 광채로 길을 만들어보련다.


  색조차 잃어버린 채 무릎을 꿇어 손으로 질러댄 비명을 서리에 뭍었던 계절이 다가온다. 나는 그곳으로,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련다. 얼어붙어 바스락거리던 머리칼이 살아감의 증거로 남아있는 그곳. 아무도 없었던 초록빛의 벌판, 그 앞에는 환한 불빛들의 덩어리가 나를 비웃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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