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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May 18. 2024

처음 하는 일에는 배려가 필요하다.


나는 매일 아침 장애인 콜택시로 출근을 한다. 


7시 30분이 훌쩍 지난 시간 배차 완료 문자가 왔다.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 앱을 통해 차가 근처에 온 것을 확인하고 휴대용 산소기를 챙겨서 캐뉼러를 코에 꽂고 집을 나섰다. 골목길에서 차를 기다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차가 보이지 않았고 도착 안내 전화도 없었다.    

 

“사고가 났나?” 

“길을 잘못 들었나?”      


온갖 생각을 하던 중에 아래쪽 사거리에서 나오는 차량이 보였다. 그런데 좌회전해서 경사로를 올라와야 하는데 직진을 하더니 다시 후진하고선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다.      


“왜 저러지?”     


한참 후에 차는 좁은 골목길에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더니 겨우 좌회전을 해서 올라와서 내 앞에 섰다. 나는 문을 열고 탑승한 후 인사를 했다. 처음 뵙는 기사님이었다. 장애인 콜택시를 정기적으로 이용하다 보면 자주 뵙는 반가운 기사님도 많이 계시는 데 오늘은 처음 뵙는 분이었다. 기사님은 내가 탑승하고 산소기를 가방에서 꺼내는 중에도 차를 출발시키지 않고 서 있었다.      


“안전띠 하셨어요?” 

‘아, 안전띠를 안 했다고 출발을 안 하신 거구나.’ 

“아 네, 지금 바로 하려고요”      


나는 바로 안전띠를 착용했다. 그리고 차는 출발했다. 


기사님은 매우 천천히 운전했다. 골목길을 내려가다가 끝에서 우회전해서 내리막길을 가야 하는데 처음 운전하는 분들은 부담스러워할 만한 곳이다. 하지만 장애인 콜택시 기사님들은 워낙 운전에서는 베테랑이라 대부분 부드럽게 우회전해서 내려가기에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분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우회전하다가 다시 후진하고, 다시 핸들을 돌리고 우회전하려다 다시 후진하고…. 몇 차례 반복하며 겨우 우회전해서 내리막 길을 내려갔다. 그런데 하필 그때 아래쪽에서 택시 한 대가 마주 보고 올라오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 마주 보게 된 것이다. 차 2대는 지나갈 수 있는 폭이었지만 누군가는 후진해서 옆으로 피해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사님은 후진해서 택시를 배려할 여유가 없어 보였다. 답답했던 기사님은 바깥 택시 기사님이 듣지도 못하는 혼잣말을 했다. “장애인 차인데 비켜 주셔야죠.” 다행히 택시 기사님이 길을 터 주셨다.      


내리막길을 내려와서 우회전한 후 일방통행인 골목길로 직진하는 것이 빠른 길이었지만 기사님이 어려워하실 것 같아 좌회전해서 큰길로 가자고 안내를 했다. 좌회전하면 꽤 넓은 도로가 나오고 조금만 더 직진하면 버스가 다니는 2차선 차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큰길로 나온 차는 주행 속도를 준수하며 회사에 무사히 도착했다. 수년간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 왔지만, 기사님의 운전을 걱정한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뒤에 탑승한 내가 이 정도로 마음을 졸이는데 기사님은 얼마나 긴장될까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운전을 직업으로 하지 않았다면 힘든 길을 가지 않으면 된다. 쭉 뻗은 대로로만 다니고, 내가 가고 싶은 길로만 다니면 된다. 하지만 운전이 직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닌 승객이 원하는 길로 가야 한다. 좁은 골목길도, 가파른 언덕길도 가야 한다. 꽉 막힌 정체 구간도 피해 갈 수가 없다. 심지어 눈비 내리는 악천후 속에서도 운전해야 한다.      


직업이란 이런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참고 견디며 감당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다. 아무리 운전을 잘하는 사람도 초보운전자였던 시절이 있었듯 모두에게는 신입직원일 때가 있다. 처음부터 베테랑은 없다. 처음은 누구나 실수가 있고, 불안해 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이 힘들다고 포기하면 경력자로 성장할 수가 없다. 선배들이 후배의 실수와 부족함을 이해하고 격려하지 않는다면 후배들은 유능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33년 직장생활을 은퇴한 후 재계약하여 직장을 이어 다니고 있기에 갓 입사한 신입직원들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다. 직원들이 승진할 때 감사 소감을 말하는데 가끔 나의 이름을 거론하며 감사를 표하는 직원이 있다. 소감을 말하는 짧은 시간에 같은 팀 동료나 선배가 아닌 다른 부서 상사에게 감사를 표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에 그 진심을 들으면 직장생활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     


초보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신 기사님의 차를 타고 오면서 나의 직장 초년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신입 시절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전산실에 입사해서 맨땅에 헤딩하며 버텼던 긴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를 챙겨준 선배가 없었다면 견뎌내지도, 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시 주어진 은퇴 후 직장생활은 처음 하는 일에 서툴고 실수하는 직원들에 대해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주고 기다려 주는 선배로 기억될 수 있도록 일보다 사람을 더 챙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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