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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Oct 03. 2023

29번째 결혼기념일

부부이야기




오늘은 결혼 29주년이 되는 날이다.


매년 결혼기념일에는 가족 모두 조촐하게 외식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내가 지인들과  황금연휴를 맞아 2박 3일로 여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어서 결혼기념일에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축하하는 시간을 앞당기기로 했다.


명절 긴 연휴를 맞아 포항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12시 50분쯤 서울역에 도착한다고 하니까 아내가 아들 마중도 나갈 겸 근처 추천 식당이 있으니까 그곳에서 식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첫째 아들도 괜찮다고 해서 외식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아내가 추천한 식당은 서울역 역사 내 있었고 전 날 첫째 아들이 앱으로 미리 예약을 했다. 우리는 12시 40분쯤 미리 서울역에 도착해서 둘째 아들을 기다렸고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아내가 이전에 와서 식사한 적이 있었는데 맛있어서 아들들과 꼭 한 번 오고 싶었다고 했다. 어제 미리 예약한 덕분에 창가 쪽 테이블로 안내를 받아 답답하지 않았고 창밖에 서울스퀘어(구. 대우빌딩) 빌딩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예약한 1시가 런치 타임이라 아들은 런치세트 A코스를 주문했다. 피자는 초리조 디아볼라, 파스타는 쉬림프 카펠리니, 음료는 제로콜라 2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단품으로는 버터 관자 그린 리조또를 추가로 주문했다.


오랜만에 함께 모인 우리 가족은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아내는 아들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부족하면 추가 주문하라고 했지만 아들들은 충분하다며 맛있게 음식을 먹었으니 조금 있다가 카페로 가서 커피 마시자고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식당을 나올 때 아내가 결제를 하려고 했으나 직장인인 첫째 아들이 밥은 자기가 사겠다며 먼저 카드를 꺼냈다. 그러자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들, 고마워. 커피는 내가 살게"


식당을 나온 우리는 첫째 아들이 추천한 카페로 이동했다. 서부역 인근에 있는 카페였다. 뭘 먹겠냐는 아들의 질문에 나는 달달한 거면 된다고 했다. 아들은 카페에서 신메뉴로 개발됐다며 추천받은 밤그레이 라떼를 주문했단다. 색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커피, 두 아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를 선택했다.


화창한 날씨,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 음료를 앞에 두고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5시가 되었다. 자주 이런 시간을 갖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가끔이기에 이런 시간이 더 소중하고 함께한 가족들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아내에게 큰 여유와 풍요를 주지 못하고 두 아들에게 더 많은 것을 누리게 해 주지 못하지만 열심히 살면서 애쓰는 모습만으로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고 인정해 주는 가족이 있어서 참 좋다.


아내는 인근의 대형 마트를 들러서 시장을 봐서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두 아들과 나는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카페에서 결혼기념일 파티를 오늘 저녁에 미리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조촐한 파티를 위한 케이크는 둘째 아들이 사겠다며 케이크를 사러 제과점으로 갔다.


오늘 저녁 만찬은 아내가 사 온 초밥과 오징어 데친 것, 그리고 치킨이었다. 점심 식사를 워낙 든든히 해서 저녁은 대충 먹을 줄 알았는데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에는 둘째 아들이 사 온 케이크로 결혼기념일 축하 파티의 시간을 가졌다. 빼놓을 수 없는 포토타임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케이크를 나누는 동안 나는 준비해 둔 선물을 꺼내 왔다. 내 돈으로 산 아내를 위한 첫 번째 다이아몬드 선물이다. 근무하는 자사 브랜드 제품으로 직원 특가로 나올 때 미리 준비해 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1캐럿 목걸이다. 일하는 동안 꼭 한 번 다이아몬드 제품을 사서 선물하고 싶었다. 반지는 너무 예물스러워 데일리로 하기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목걸이를 골랐다.


아내가 직접 채워 달라고 해서 목걸이를 걸어 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결국 둘째 아들이 엄마에게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29년간 늘 나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용기가 되어준 아내, 여유롭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두 아들 키우면서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은 아내가 정말 고맙다.


첫째 아들이 방에 들어갔다가 봉투를 가지고 나왔다.


"아빠 엄마 결혼기념일 축하해요."


"아들 고마워"


봉투를 받은 아내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했다. 직장인인 아들이 때를 따라 부모에게 아들 노릇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여서 너무나 대견하고 고맙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30여 년을 살아온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은 사랑은 물론 많은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서로를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상대의 부모와 형제, 그 친척까지 이해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신랑의 역할, 신부의 역할뿐 아니라 새로운 가문의 사위, 며느리, 새로운 친척의 역할이 생긴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너무나 귀하고 복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크나큰 부담이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든 것을 이겨내고 큰 불화 없이 29년을 함께 살아왔다는 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내는 장애를 가진 남편과 결혼하는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29년을 살아오면서 장애를 가진 남편과 함께 살기에 겪어내야 했던 시련들 또한 얼마나 많았을까. 남편이 상처받을까 봐 말 못 하고 속으로 삼켜야 했던 순간들 역시 많았을 것이다. 아내는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통해 이겨낼 수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은 생을 더 허락하신다면 앞으로 30년을 더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좋겠다. 더 애쓰려고 더 잘하려고 하기보다 지금처럼만 말이다. 부부는 서로에게 짐이 되기보다 쉼이 되어야 한다. 각자의 약점을 서로 보완하고 보듬어 주고 함께 하는 시간이 평안해야 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통해 함께 하기에 더 자유로운 관계, 함께 하기에 더 풍성한 관계가 되는 것이 다가올 30년 삶에 대한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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