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청지기 Oct 11. 2023

목에 구멍 뚫는 것보다 낫지.

주치의 선생님에게 혼나다



나와 같은 호흡기 관련 중증 환자는 매년 정기적으로 입원하여 호흡기 재활 점검을 받아야 하는데 최근 2년간 코로나를 이유로 호흡기 재활의학과에 내원하지 않았다. 물론 그동안 코로나 감염 등 감기 증세로 호흡기 내과를 내원해서 몇 번 처방을 받기는 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위해 사용하는 인공호흡기에 대한 의료보험 지원을 받으려면 2년마다 처방전을 의료보험공단에 제출해야 하는데 최근 2-3년간은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자동 연장이 되어 왔었다.  그런데 이제 올해부터 모든 절차가 정상화됐다. 다음 달로 만료되는 인공호흡기 처방전을 받기 위해 호흡기 재활의학과 주치의 선생님을 다시 찾았다.


외래 진료 전 호흡기 환자는 전공의가 호흡 검사를 먼저 한다. 진료 전에 들숨, 날숨 등과 이산화 수치 점검 등을 받았다. 이산화탄소 수치가 59를 나타냈다. 해당 수치는 최소한 40 이하여야 한다. 나는 이러한 결과를 갖고 주치의 선생님을 만났다.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떻게 합니까?"


만나자마자 혼이 났다.  


"2-3년간 진료가 없으면 다시 처음부터 데이터 세팅을 해야 합니다.

 지금 이산화탄소 수치가 59인데 이것은

 처음 이 병원을 찾았을 때와 거의 같은 수치예요.

 이렇게 계속 내원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체크하지 않으면

 100% 목에 구멍을 뚫을 수밖에 없어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입원해서 밤에 잘 때 검사를 하고

 인공호흡기를 재 세팅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겁니다."

 여기 진료를 착실하게 받으면

 평생 목에 구멍 뚫는 일은 없을 겁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폭풍 같은 설교가 있었다.


사실 코로나 때문에 입원을 피한 건데 일부러 진료를 기피한 것처럼 생각하며 혼내는 것이 내심 억울했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 궁색한 변명을 했다.


"매월 방문하는 간호사가 검사할 때는 수치가 괜찮아서

  큰 문제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랬더니 방문 간호사는 기기의 상태만 본다는 것이다. 그분들이 인공호흡기 내의 수치 값을 변경하거나 하면 불법 의료 행위가 돼서 감옥 간다고 하셨다.  내가 말한 뜻은 간호사가 수치를 조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간호사가 가지고 다니는 이산화 탄소 수치와 산소포화도 측정 장치의 수치가 매월 적정하게 나와서 괜찮은 줄 알았다는 이야기인데 주치의 선생님은 내가 의사인 자기 말보다 방문 간호사의 검사 기록지를 더 신뢰한다고 이해한 듯하다. 그다음부터는 입을 꾹 다물고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만 들었다.


나는 11월에 인공호흡기 처방전이 필요하고 회사 업무 때문에 입원 없이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러 온 것인데 입원 없이 가능하냐고는 물어보지도 못하고 혼만 났다. 선생님은 바로 입원 일정 잡아서 입원하라고 했다. 일정은 별도로 나에게 전화를 줄 것이고 병원 병실 상황에 따라 정해질 것이라고 했다.  내가 일정이나 기간을 전혀 정할 수 없고 병원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폐 기능이 떨어진 나 같은 경우에는 산소기를 통해 24시간 산소를 1.5L 공급받고, 저녁에는 인공호흡기 쓰고 자면서 낮동안 몸에 쌓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야만 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앰부를 통해 추가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빼줘야 할 때도 있다. 이곳 병원의 경우는 매년 정기적으로 입원을 해서 검사를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직장을 다니는 나로서는 병원의 일정에 맞춰 회사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매우 곤란한 상황이다. 입원 기간도 정해진 것이 없다. 어떤 때는 일주일이 훌쩍 넘을 때도 있다. 비용도 부담이다. 기기 사용료가 의료보험이 적용된다고 하지만 상당액이 매월 지출되고 있고 1년에 1회 정기 입원을 일주일 정도 하면 그 금액도 큰 금액이다. 오늘 전공의로부터 받은 호흡 검사료와 교수님 진료를 합쳐서 10만 원이 훌쩍 넘는 외래 비용을 냈다.


결국 올해는 입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괜찮은 줄 알고 신경 쓰지 않고 지냈는데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고 난 후 갑자기 우울해졌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여보, 나 의사 선생님에게서 혼났어.

 이번에 입원해야 할까 봐.ㅠㅠ"


아내가 한 마디 했다.

"그래도 목에 구멍 뚫는 것보다 낫지."

작가의 이전글 친절보다 무관심이 낫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