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위한 매거진 [시와 반시 2025 가을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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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개념, 이미지의 결합으로서만 아니라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인간의 일상성 속에서 공명함으로써 우리에게 의미를 준다.
발비바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표들의 의미론적 독특성 및 그것들의 다의성은 기계 번역에 저항하는데, 왜냐하면 독특성과 다의성은 무엇보다 맥락(텍스트들 간의 일치와 암시의 직조물로서의 담론에 내재적인 맥락과, 무한하게 많은 가능한 언표 행위의 상황 및 지향에 준거하는 외재적인 맥락)에서 비롯된 것 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제적 관점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는 반대로 번역기가 인간 번역자보다 더 많이 실수한다."
번역된 시가 감동을 잘 주지 못하는 것은 원어의 말과 말 사이에 끼어있는, 혹은 말의 표면에 있는 까칠까칠한 그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의 AI시들은 우리가 왜 '유리'라는 유토피아 혹은 헤테로토피아를 부르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웹이라는 그물망 속에서 *타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AI 내부는 타자의 낯섦이 불러일으키는 타자의 탐구, 타자의 발견, 타자에 대한 놀람, 타자에 대한 이끌림이나 적대감을 사실은 동일한 데이터를 지니고 있는 동일자일뿐인, 가상적 타자(닉네임), 분신에 대한 끌림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 속에서 (타자로서의) 이것이 식별될 수 있을까? 우리는 식별하고 있었던가? 우리가 그것을 식별할 수 있다면 AI는 시에 대한 재능이 아니라 '시 아닌 시'의 재앙일 수도 있을 것이다. ... [뒷 부분 생략]
*타자(Autrui/L'Autre):
1. 레비나스의 윤리적 타자 - 레비나스에게 타자는 나의 인식 능력으로는 절대로 포섭하거나 동일시 할 수 없는 존재다. 타자는 무한(infini)하며, 나의 동일자의 세계를 초월해서 불쑥 나타난다. 타자는 나보다 항상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내가 타자를 이해하려 분석하고 노력해도 타자는 언제나 나의 인식 범위를 벗어난다.
2. 사르트르의 현상적 타자 - 사르트르에게 타자는 나의 자유와 존재를 위협하는 실존적인 존재다. 내가 세상을 인식하고 나의 자유를 행사하는 순간 타자의 시선이 나를 덮친다. 타자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세상을 주체적으로 파악하는 주체가 아니라 타자의 세상 속에 갇혀버린 대상이 되어 버린다.
타자는 나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에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타자와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끝없는 투쟁이자 갈등이다.
*랑그 - 사회적이고 추상적인 언어 체계 그 자체
*파롤 - 개인이 실제로 사용하는 구체적인 언어 행위
- 정채린
시는 언어 예술로써 *랑그의 체계를 빌려오지만, *파롤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대형 언어 모델인 지금의 AI에게 시의 발화란 단순한 화용론적 발화에 가깝다. AI가 언어의 의미론적인 측면을 파악할 수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언어의 일상 활용에 있어 단어가 문장 내 특정한 위치에 나타날 확률을 계산한 다차원 벡터를 통해 단어 간의 통계적 거리를 파악한 것에 불과하다.
나는 번역서에서 감동을 얻기 어려워하는데, 모든 번역서가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처럼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의 번역서는 모국어로 쓰인 책만큼 감동을 받지만, 문화적으로 낯선 나라일수록 감동은 물론 내용 파악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현대 철학의 타자는 마치 양자역학의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불확정성의 원리를 닮았다. 관찰 되어질때까지의 타자는 확정되지 않았으며, 관찰되고 나서도 나는 타자에 대해 완전히 알 수 없고, 관찰당하는 나는 더 이상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나로서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논리대로 시를 발화하는 AI를 '시의 화자'로 인정할 때, 만약 시의 본질이 인간의 지성이나 AI에게 식별 가능한 패턴으로 포착될 수 있다면 AI는 그 패턴을 완벽하게 모방핼 낼 수 있고 이는 '시 아닌 시'를 짓는 탁월한 재능이 될 것이다.
내가 쓰고 있는 장르는 '시 아닌 시'가아니라 '시'이고 싶다. 그것은 내가 인간으로서 파악되지 않는 타자일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시의 어떤 단 한 음절도 AI에게 의탁하지 않는 이유이다.
노태맹 시인의 [詩 / AI, 불화의 시작 중에서]의 전문은 밀리의 서재, 시와 반시 146p - 161p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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