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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린-8강] 다독(Extensive reading)

by 정채린

08화 8강- 쓰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읽기부터 하라

8강 과제 - 서하진의 「제부도」를 읽고, 작가의 시선으로 분석하라.

서하진의 「제부도」는 1995년 제19회 이상문학상 추천 우수작입니다.


『네 줄이면 된다』에 따른 기초 분석

1. 작가의 나쁜 질문

첩의 딸로 태어나 평생 세컨드의 설움을 보고 자란 여자가 결국 엄마와 똑같이 유부남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녀는 엄마와 다른 결말을 맺을 수 있을까.


2. 캐릭터의 가짜 욕망과 진짜 욕망

가짜 욕망: 유부남인 그와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가 이혼하고 나에게 오기를 바라는 것.

진짜 욕망: (남자에게 사랑받는 게 아니라) 자신의 근원적 고독을 이해하고 그 굴레를 직면하는 것.


3. 로그라인

[트라우마에 갇힌 주인공]이 [사랑받고 싶다는 이유]때문에 [유부남인 그를 기다리는 가짜 욕망]을 추구하려 하는데, [무책임한 그와 하루에 두 번 차단되는 바닷길이라는 방해요소]의 방해를 받아 사랑에는 실패하지만, 진짜 하려던 것은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직면하는 것]을 깨달아 [엄마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서정 소설]


4. 4단계 플롯 분석

1단계(사건의 발생): 주인공이 유부남인 그와 제부도에 감

2단계(사건의 전개): 차가 고장 나 갯벌에 빠질 위기에 처함

3단계(사건의 심화): 남자가 갯벌과 회사에서 사라짐

4단계(사건의 해소): 엄마의 죽음을 확인, 자신도 죽음



*이은희 작가의 네 줄이면 된다는 소설 작법책은 올해 베스트 셀러 였습니다.


일반적 분석

1. 서사 구조와 시점

해당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며, 구조는 액자식 구성, 처음 제부도로 다시 가는 날을 출발점으로 하여 과거(어린 시절, 서울, 봉제공장, 직장, 유부남과의 관계, 첫 제부도 여행)로 현재 제부도 풍경 하나하나와 촘촘히 연결되어 있으며, 길이 열렸다가 다시 닫힌다는 섬의 구조의 활용이 좋았다.

특히 마지막에 다시 제부도로 가는 행위가 죽음을 향한 능동적인 선택으로 읽혀 구조적으로 완결감이 있으며 죽음에 대한 설득력이 있었다. 다만, 결말의 자살 암시가 이미 예견된 느낌이라 반전이 없는 점이 아쉬웠으나 이 것은 2025년의 독자에게는 식상한 선택일지라도, 1995년에는 새로운 선택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 인물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세발자전거, 싸리꽃 길, 수학여행 기차에서 혼자 내리는 장면)등이 현재의 행동을 설명해 주는 심리적 前事로서 잘 이용되었다.

'나는 달아날 거야'라는 대사 한 마디로 주인공의 중심 정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절제의 미학을 읽었다.

주인공과 그를 포함해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이 평면적이어서 아쉬웠다. 특히 아무리 서브캐릭터라고 할지라도 사건의 방아쇠가 되는 '그'의 성격이 평면적이다 못해 전형적인 점이 아쉬웠다. (이것도 아마 고전 소설이라 그런 것 같다)


3. 플롯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불륜 커플의 파국을 다루고 있으나, 심층적으로는 비극적 운명의 대물림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은 첩의 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랐고 그런 엄마의 삶을 결별하여 연락이 끊어지도록 달아나 살았으나 역설적이게도 엄마와 똑같이 유부남을 만나 도망치려고 했던 삶의 궤적 위에 운명처럼 다시 서게 되었다는 비극의 장치는 클리셰적이라기보다 클래식으로 읽힌다.

특히 밀물이라는 시간적 제한을 활용해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 나가는 솜씨가 탁월하며, 운명의 굴레와 인간의 고독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자칫 식상할 수 있는(아마 1995년엔 식상하지 않고 매우 파격적이었을 수도) 불륜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깊이 있게 파고든 심리소설


4. 문체

여태까지 플롯 어쩌고, 인물 어쩌고 했던 것은 다 들러리였다. 이 소설이 왜 이상문학상을 받았는지에 대해 문체 때문이라고! '애오라지 문체 덕'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사실 크게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을 듯싶다. 문장의 탁월함은 독자를 사건 현장으로 끌고 간다. 나는 제부도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음에도 작가의 문체에 멱살 잡혀 그 질퍽질퍽하고 추운 해변의 자갈 한가운데 조난 당했다.


서하진의 문체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표현은 겹감각이다. 겹감각이라는 표현은 방금 내가 만든 것인데, 시간 위에 촉각을 겹치고, 촉각 위에 청각을 겹쳐서 그 감각을 그대로 독자의 지각 위에 올려놓는다. 공감각이 감각의 파장을 만드는 일이라면, 겹감각은 감각 그 자체를 옮기는 일이랄까. 어둠을 들리게 하는 공감각 대신 독자의 눈과 귀를 동시에 멀게 하는 겹감각적 표현은 아직도 4D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현대의 미개한 기술에 예술적 현안을 제시한다.


슬프다, 아프다를 머리로 이해하게 하기보다. 그냥 독자를 차가운 바닷물에 빠트리고, 싸리꽃 밭에 열이 난 채로 버려두고, 세발자전거에 쌓인 먼지가 되게 한다. 작가의 시선은 작품 속 모든 것을 훑고 간다. 자동차는 긴 길을 달려 한숨을 내쉬고, 플라스틱 수저는 흰 가면을 쓰고 그 안에 시선을 감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랑곳하지 않는 바람이 있음으로인해 머리카락은 그저 날리는 게 아니라 '짓씹힌다'. 이 소설 속에서 작가가 선택한 동사는 정말로 살아 숨 쉰다. 조개껍질은 깔려 있고, 부서지고, 길은 드러나며 사진은 손등을 스친다. 단 한 번도 정지하지 않은 문장이 시간과 함께 독자의 가슴에서 재생된다. 제일 대단한 점은 이 모든 것들이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정.


사건을 설명할 때도, 배경을 말해줄 때도 모든 문장은 감정을 향해 움직인다. 소설 속에서는 바람 한 점도 감정 없이 흘러가지 않는다. 어떤 꽃도 무생물로 피지 않는다. 바다가 길을 열고 닫는 당연한 자연의 흐름마저도 주인공을 위해 준비된, 그리고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된 우주적 움직임으로 보일 지경이다. 문장은 사건을 따라가면서도 사실 감정의 좌표를 끊임없이 찍어 나가는 셈이 된다. 그러니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줄거리 요약에는 몇 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요약할 수 없는 감정에 몸서리치게 된다. 이런 소설에게 플롯이 어쩌고, 인물의 하마르티야가 어쩌고 하는 분석이 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는 독자에게 감정을 강요하는 소설을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한국의 신파에 거의 경기를 일으킨다. 그런데 불륜이니 자살이니 하는 신파적 소재를 가지고도 소설은 신파를 전혀 묻히지 않았다. 첩의 딸로 자란 수치심, 버려질까 봐 발광하는 불안, 선택되고 싶다는 욕망을 소설은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세발자전거에 쌓인 먼지, 싸리꽃 길에서 열이 나는 아이, 수학여행 기차에서 혼자 내리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감정을 말하는 대신 감정이 일어나기 전과 후에 몸과 사물이 어떤 상태였는지 하나씩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건 독자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선택임과 동시에 그래도 독자는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줄거리는 따라 할 수 있다. 인물 설정은 모방이 가능하다. 그러나 바람 한 점도 감정 없이 흘려보내지 않는 문체는 복사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세계를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감각화 하는 어떤 것, 사건이 아니라 감각으로 독자를 설득하겠다는 어떤 결심이 소설의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빼곡히 들어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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