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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쓰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읽기부터 하라

독자의 시선이 아니라 창작자의 시선으로 읽기

by 정윤

◘ 글을 쓰려면 쓰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읽기부터 해야 한다.


글을 쓰고 싶다고 해서 무턱대고 쓰기부터 해서는 안 됩니다. 쓰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고 읽기부터 해야 합니다. 읽는 일은 쓰는 일보다 중요합니다. 많이 읽는 사람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은 집필 중인 소설의 단 한 줄을 위해서 오백 페이지 짜리 전문 서적을 읽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그렇게 얻은 그 한 줄이 독자를 압도하여 사로잡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독서는 습작 단계에서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저는 글을 쓰다가 막힐 때, 글을 덮고 책을 읽습니다. 남의 책을 읽다가 보면 막혔던 이야기가 다시 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작가의 시를, 특히 유명 작가의 시를, 수필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수필을, 소설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유명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유명 작가의 글을 읽으라는 이유는 자신의 눈을 높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안목을 높여야 좋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작품을 쓰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준비 없이 시작한 일이 성공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강의를 듣는 것도 좋고, 습작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독서입니다. 글을 쓰겠다고, 그것도 자신이 쓴 글을 책으로 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독서를 하지 않고서 무슨 글을 쓰겠습니까.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읽고 또 읽고 난 뒤, 이제 쓰지 않고는 도저히 더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되는 그 단계까지 묵묵히 남의 작품에 빠져드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도저히 글을 쓰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은 충동이 미친 듯이 일어날 때, 그때 글을 써도 늦지 않습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 중에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쓰고 싶은 욕구에 시달려 그 욕구 자체의 함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몹시 불행한 일입니다.


◘ 읽기는 ‘보이지 않는 기법’을 몸에 새긴다

어떤 기법서를 읽어도 플롯은 이렇게 구성하고 인물의 욕망은 이렇게 배치한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사실 그건 교과서처럼 머리로만 이해될 뿐입니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은 말합니다. 읽으면서 배웠다고.

박완서 작가는 자신이 전업 주부 시절, 아이들 재워 놓고 읽은 수많은 책들이 자신의 문체를 만들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학 시절엔 축구도 소설도 음악도 하지 않았지만, 단 한 가지 독서만은 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독서가 그의 리듬감 있는 문장을 만들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읽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법들을 몸으로 체득하게 하는 훈련입니다. 가르칠 수 없는 부분, 설명되지 않는 감각들, 장면 전환의 타이밍, 감정을 누르는 방식, 침묵의 활용. 이런 것들은 결국 읽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경험하는 세계는 너무 좁습니다.

제가 권하는 건 특정 장르만 읽는 게 아니라, 자기 취향 바깥의 책을 읽는 일입니다.

실제로, 판타지만 읽던 한 학생이 어느 날 사회파 소설을 읽은 후 자신의 인물을 완전히 다르게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인물은 더 복잡해지고, 갈등은 더 자연스럽고, 감정은 현실감 있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은 결국 현실과 인간을 해석하는 일입니다. 렌즈가 바뀌면, 작품도 바뀌게 됩니다.


저는 글을 쓰다 막히면 조언 글을 찾아보지 않습니다.

대신 비슷한 톤의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감정 서사를 섬세하게 끌어야 할 때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장을 다시 읽고, 긴장감을 조절해야 할 때는 돈 윈슬로나 제임스 해들리 체이스 같은 하드보일드 작가들을 읽습니다. 읽는 순간, 문제의 실마리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쓰는 소설 중에 이 장면은 더 늦게 들어가야겠다든가, 심리를 드러낼 때는 이렇게 두텁게 감정 묘사를 하면 더 무거워지겠구나, 하는 해답을 얻곤 합니다.

이처럼 읽기는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막힘을 풀어주는 가장 실전적인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 읽지 않는 작가는 단 한 명도 없다.

실제로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습작생을 봐왔습니다. 그중 읽지 않으면서 쓰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읽지 않으면 문장은 말라가고, 세계는 좁아지고, 표현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읽지 않으면 버틸 수 없습니다. 모든 작가들은, 결국 같은 길을 걸어갑니다.

읽기는 작가에게 지식 습득이 아니라 필수적인 작업 과정입니다.

문장을 살리고, 감정의 깊이를 만들고, 세계를 확장하고, 구조를 감각으로 익히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독서 경험을 통해 완성됩니다. 읽지 않으면 한 방향에서만 쓰게 됩니다. 읽으면 수십 개의 방향이 생기고, 그 방행들 사이로 바람이 흐르게 됩니다. 그 바람이 결국 당신의 작품을 움직입니다.


가능하면 단계적인 독서를 하라.

읽기가 좋다고 해서 무턱대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30년대 글과 현재의 글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 시대별 특징과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단계적인 독서입니다. 근대 작가의 글만 읽어서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근대 작가의 글을 읽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근대 작가의 글도 한국 문학사의 훌륭한 토대가 되고 있는 만큼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읽은 근대작가의 작품들을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근대사의 문학작품도 읽어야 하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 시대 흐름이 급변하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 작가들의 관심은 무엇이며, 그 관심의 표명은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확인이 필요다는 얘기입니다.


절망하기 위해서도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좋은 작품을 읽다 보면, 감동에 앞서 절망부터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은 도저히 이런 작품을 쓸 수 없겠다는 좌절감과 열등감이 생깁니다. 그런 열등감은 좌절로 이어져 글쓰기를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으며 절망하곤 합니다. ‘나는 아니야.’ ‘나 같은 사람은 글을 써서는 안 돼.’라는 자괴감이 나를 괴롭힐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걸 이겨내야 합니다. 자기 극복을 위한 과정으로서의 그 절망 연습은 새로운 에너지로서의 치환 작용까지 가능하게 만듭니다. 깊이 절망하면, 그 절망의 깊이에 비례한 창작 욕구가 유발됩니다.


작품을 이것저것 읽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한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으면 좋습니다. 일단 끌린다고 생각되는 작가의 작품은 여러 권 읽어야 글쓰기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작가라고 해서 아예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비록 내 취향에는 맞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취향에는 잘 맞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작품은 사람 사람마다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되 독자의 시선으로 가 아닌, 창작자의 시선으로 읽어야 한다.

책을 읽을 때, 독자의 시선으로 가 아닌 창작자 즉, 글 쓰는 작가의 시선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 글의 줄거리나, 내용, 감상, 느낌에서 머무는 수준이 아니라, 이 작가는 어떤 의도로 글을 썼으며, 이렇게 구성을 잡았구나, 이런 문체로 썼구나, 결말은 이렇게 냈구나, 이 작가가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뭘까? 나라면 이렇게 결론을 냈을 텐데, 이 부분에서 반전을 줬더라면 더 극적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를 생각하면서 글을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독자로 머무를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입장에서 글을 읽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좋은 작품을 섭렵한 후에는, 수준이 좀 떨어지는 습작생의 작품들을 읽으면 좋습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많이 읽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작품을 보는 안목도 높아져 있게 마련입니다. 습작생들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 작품의 단점과 고쳐야 할 점이 훤히 보입니다. 습작생들의 작품을 읽다 보면, 나는 이보다 잘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다소 수준이 좀 떨어지기는 해도 그 습작생의 작품에서 많은 배울 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8강 과제>

서하진의 <제부도>를 분석해서 읽고 나름의 느낌과 감상 쓰기입니다.

작품을 전문가들처럼 분석할 필요는 없지만, 나름대로 분석해서 감상과 함께 쓰시면 되겠습니다.

가령 작품을 분석하지 못하겠다 생각되면, 그냥 줄거리를 요약하여 쓰고 감상평을 쓰시면 됩니다.

좀 더 전문적인 접근법으로는, 이 소설의 플롯을 분해하여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이 소설의 장점과 단점, 개선 방안들을 내세워 쓰는 방법입니다.

둘 중 역량이 되는 방법을 선택하시면 되겠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쓰시면 됩니다.

* 서하진 작가의 <제부도>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지면에 실리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 8강에서는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다음 화인 9강에서는 비유법에 대한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다음 9강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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