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하기
-글의 첫 문장은 그 작품의 첫인상이다. 도입 부분에 승부를 걸어라.
글의 첫머리는 우선 흥미가 있어야 합니다. 독자가 작품을 읽는 동안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그 첫머리의 인상, 그 매력 때문입니다. 독자들은 작품을 읽는 동안 계속 그 첫머리 장면을 잊지 않고 기억해 냄으로써 이야기 속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당신이 독자의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하고, 독자가 당신의 글을 끝까지 읽게 하는 흡인력을 첫 문장에서 사로잡아야 합니다. 성공한 글은 첫머리가 잘 풀린 경우가 많습니다. 첫 매듭이 잘 풀려야 글이 잘 풀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의 머리를 총동원하여 첫 문장에서 독자를 붙잡아야 합니다. 글은 첫 장만 읽어봐도 압니다. 당신은 신춘문예에 응모된 수많은 작품이 예심 과정에서 그 첫머리에 의해 탈락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몇 천명이 응모하는 신춘문예 작품을 심사하려면 탑처럼 쌓여있는 수많은 작품을 읽어야 합니다. 심사위원들이 그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 내려갈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예심 심사위원들은 당신의 글 도입부분만 봐도 그 사람의 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챕니다. 대부분의 예심 심사위원들은 당신의 글 도입 부분을 읽고 나서 예심을 통과시키거나 탈락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첫 부분부터 독자를 끌어들여서 끝까지 읽게 하는 것이 실력입니다. 당신이 그처럼 힘을 기울인 첫머리가 당신의 작가적 재능과 잠재된 상상력을 확인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로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остранение)’기법입니다.
낯설게 하기는 익숙한 사물이나 상황을 낯설게 보이도록 표현해, 독자가 그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문학적 기법입니다. 문학이든 영화든, 우리가 너무 익숙해진 대상은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낯설게 하기는 그 익숙함을 깨뜨려, 다시 처음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전략입니다.
낯설게 하기는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가 빅토르 쉬클로프스키(Viktor Shklovsky)가 제안한 개념으로, 예술의 핵심 기능은 사물을 낯설게 보여 주어 지각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람은 반복에 익숙해지면 사물이나 사건을 자동적으로 처리해서 ‘보는 듯하면서도 제대로 보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바로 이 무뎌진 감각을 깨워야 하죠. 낯설게 하기는 그 목적을 위해 표현 방식을 의도적으로 바꿉니다.
방법은 다양합니다.
어린아이의 시선, 동물의 시선, 물건의 시선으로 일상 묘사
예: “의자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낯선 비유, 의도적인 반복, 말투 변형
예: “창문은 바람의 발자국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상의 사건을 매우 천천히 혹은 기계적으로 묘사
시간의 흐름을 비틀어 독자의 감각을 깨우기
예상과 반대로 서술
독자의 익숙한 기대를 무너뜨리기
* 카프카의 『변신』: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거대한 갑충으로 변해 있었다.
→ 평범한 가정과 직장인의 삶을 갑충 변신이라는 ‘낯섦’으로 재조명.
* 황순원 ‘소나기’ : 어린 시선을 통해 자연과 감정을 순수하고 생소하게 드러냄.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曾孫女) 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이상의 '날개' : 일상의 공간과 사물을 기괴하게 묘사해 새로움 창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낯설게 하기는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독자의 감정, 인식, 감각을 흔들어 각성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일상의 본질이나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입니다.
다음은 필자의 소설 <달팽이>의 도입 부분입니다.
-모두 잠이 들었는지 병동 안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창문에는 쇠창살이 굳게 처져 있다. 내가 누워있는 공동 침실의 방문은 열려 있다. 아니 애초부터 설계를 그렇게 했는지 아예 문이 없다. 간호사들이 발소리를 죽이며 수시로 방안을 기웃거렸다. 천장에 붙은 전등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약 기운이 전신에 퍼지는지 온몸이 나른해진다. 같은 방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동공 속으로 검은 달이 떠올랐다. 검은 달 둘레를 노란빛의 테두리가 감싸고 있다.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한 빛에 둘러싸인 그달은 이내 스러져 버린다. 검은 달이 사라져 갈 때 달이 내는 한숨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정윤 소설⟪달팽이⟫도입 부분 발췌)
다음은 가와바타야스나리의 단편소설 <설국>의 도입 부분입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자리에서 처녀가 다가와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차가운 눈기운이 흘러들어 왔다. 처녀는 창문 가득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듯,
「역장님, 역장님─」
등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으며 온 남자는, 목도리로 콧등까지 감싸고 귀는 모자에 달린 털가죽을 내리 덮고 있었다. (가와바타야스나리, 단편소설⟪설국⟫도입 부분 발췌)
다음은 조해일의 단편소설 <매일 죽는 사람> 도입부입니다.
-일요일인데도, 그는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들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조해일, 단편소설⟪매일 죽는 사람⟫도입 부분 발췌)
다음은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 도입부입니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이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 튀어나와 있었다. 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시작된 대화를 나는 들었다.
-- 중략--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김승옥 단편소설⟪무진기행⟫도입 부분 발췌)
다음은 신춘문예에 당선된 필자의 단편소설 도입 부분입니다.
-냉동실에서 꺼낸 노파의 시신은 뼈와 가죽만 남아 처절하리만치 앙상했다. 가족들은 통유리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내가 노파의 팔을 펼치자 주사 바늘 자국으로 퍼렇게 멍들어 있던 양쪽 손목이 드러났다. 그는 나무 막대처럼 뻣뻣한 노파의 팔을 알코올 묻힌 거즈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사내의 행동은 기민하고 침착했다. 노파의 배는 쭈글쭈글하게 오그라져 있었다. 그곳은 빈 황무지처럼 음습하고 피폐해 보였다. 자식들을 어루만지던 손과, 자식들을 보고 웃음 짓던 노파의 얼굴은 사내의 손놀림에도 무표정했다.
(정윤 단편소설 ⟪장다리꽃⟫도입 부분 발췌)
-글의 첫머리는 작품 내용을 암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 첫머리를 통해 이야기의 어떤 실마리를 잡을 수 있도록 세심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암시는 대체로 그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장면의 분위기 묘사로 나타납니다.
-1964년 겨울은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김승옥 단편소설⟪서울, 1964년 겨울⟫
예시) 아래 예문은 선택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단지 예시문일 뿐입니다.
1. 의문문으로: 그는(그녀는) 왜 그랬을까?"
2. 장면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3. 현재로: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목표: 800~1,000자
오늘은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도입부 쓰는 법에 대한 공부를 해봤습니다.
다음 주에는 <감상문 쓰기에 대한 수업>이 펼쳐집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