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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모 Sep 23. 2024

나를 여행에 던진다는 건

그곳은 비엔나였다.

2024년 2월과 7월.

두 시간 넘게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만난 일본인 음악 석사생과 하루만큼의 인연을 만들게 되었다. 둘 다 버스 시간에 맞춰 일찍 준비하느라 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상태였는데 거기다가 버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허기가 매우 고팠다. 겨우 탄 버스는 단정치 못한 셔츠와 피곤에 절은 얼굴을 한 두 명의 버스 운전사들이 이끌고 있었다. 그렇게 한 번씩 차선을 넘기도 하는 버스를 겨우 믿으며 비엔나로 향했다. 웃긴 건, 내가 예약한 자리 번호를 찾지 못했다는 것인데 덕분에 하루만큼의 인연의 옆자리에 앉아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녀의 연애 이야기에 약간의 부러움을 느끼고, 음악 세계에 약간의 동경을 표하며 비엔나에 도착했다. 원래 나는 숙소에 짐을 두고 저녁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버스가 두 시간이나 늦어버리는 바람에 무거운 짐을 모두 들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우리의 그 저녁은 이후 있을 비엔나 국립 극장에서의 오페라를 가기 위한 애피타이저였다. 그래서 식당은 큰

고민하지 않으려 내가 갔던 그 식당에 가기로 했다.


나의 그 식당은 5개월 전, 비엔나를 사랑하게 해 준 공간이다. 혼자 로컬 식당에 쭈뼛거리며 들어온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던 손님들과, 최선의 친절을 베풀어주었던 종업원을 만난 곳이다. 한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최고 맛집이라 소문난 식당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눈으로 찜해둔 곳을 들어갔던 것인데 오붓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나의 적적함을 달래주기에 완벽해 보였다.


혼자 여행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과 동시에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고요함에 나를 던지는 순간의 연속이다.

아침에는 어느 곳으로 떠나고 있다는 이동감에 몸을 맡기며 한없는 설렘을 느낀다. 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자신만만하다. 그러다 몇 시간만큼의 기억을 쌓아 익숙해지면, 저녁에는 공허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그리고 날 지나쳐가는 재잘거림에 외로움을 느끼며, 나와 이 도시의 관계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한낱 여행객에 불과한 나는 이 도시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내 자리를 끝없이 옮겨가야 하는 여행객은 해가 저물고 심심찮은 담배 연기를 맡을 때쯤 도시의 외로움에 여행객의 그것을 더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저녁 식사 자리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시간은 나와 이 도시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다.


다행히 비엔나에서의 첫 저녁 장소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작은 글라스에 든 맥주와, 잔뜩 기대하고 시킨 슈니첼을 앞에 두고 한 입씩 조심스레 이어갔다. 홀로 여행객을 달래기에 충분한 맛이었다. 결국 디저트까지 욕심내 시키며 그 장소와 충분한 인연을 쌓았다. 디저트는 생각보다 입맛에 안 맞아 다 먹지 못했지만. 식사를 마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저녁거리에 나오며 그곳을 구글맵에 추가했다.


때마침 그 일본인 음악 석사생과 저녁 장소를 정해야 할 때 유일하게 그곳이 떠오른 것이다. 무거운 짐을 이고 서둘러 도착한 그곳에는 나를 담당했던 종업원은 없었다. 아쉬워하기도 잠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매니저는 그대로였다. 내가 그곳에서는 눈에 띄는 얼굴이어서 그런지 그 매니저도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모르지만 5개월 전에 왔던, 나 같이 생긴 여행객을 기억하는 것일까? 땀에 절어 매우 지저분한 상태였고, 그 상태로 연주회를 보러 갈 수는 없었기에 나와 그 석사생은 한 명씩 번갈아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서로의 캐주얼한 블랙 드레스를 가볍게 칭찬하며 우리는 기분 좋게 식사를 이어갔다. 깔끔해진 우리의 모습을 보고 매니저가 눈웃음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5개월 전 사진을 뒤적거려서 그가 배경으로 나온 음식 사진을 찾아냈다. 매니저를 불러 이것 좀 보라면서 자랑스럽게 말하니, 따뜻하게 웃어주었다. 그때 나는 같은 여행지를 다시 찾아오는 것에 처음 매력을 느꼈다. 그 매니저가 적어도 나를 기억해 주는 척해주어서, 그리고 나에게 자랑스러운 증거가 있어서. 다음을 기약하며 증거를 남기기 위해 이번에도 그 매니저가 배경으로 나올 만큼의 사진을 찍었다. 기분 좋은 만큼 슈니첼과 굴라쉬, 그리고 맥주 한 잔 반을 허겁지겁 먹어대면서 또다시 올 것이라는 가벼운 희망을 가졌다.


다 먹고 나갈 때 매니저가 한 마디 했다. 나는 잘 못 들어 석사생에게 물어보니 5개월 뒤에 다시 오라는, 지친 여행객에게 위로가 되는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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