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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모 Oct 08. 2024

도시의 낭만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곳은 파리였다.

2024.02.12 메모


기대하지 않고 도착한 파리는 기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리에서 풍기는 지린내와 지저분한 공중 화장실 그리고 별 거 없는 에펠탑까지.


그러나 내가 여전히 파리에는 낭만이 살아있었다. 보이지 않는 어디선가 예술이 꿈틀거리고 있었고 그 움직임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움직였다. 전염되고만 싶은 예술의 바이러스.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의 빛나는 피라미드를 보며 깨달았다. ‘아, 파리의 낭만은 사람들에게 있구나.’ 라는 것을.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며 그 노동의 값을 정해두지 않은 아리따운 사람이 있었다.


카페에는 믿기는 어려웠지만 바로 옆 건물에 산다는 영화 감독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약간은 마비되어 보이는 혀를 움직이며 정확한 영어 문장으로 말을 거는 그 감독과 나는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일방적인 대화였지만 흥미로웠기에 친구를 앞에 두고 그 감독의 말에 잠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우리는 한 가지 합의를 보았다. 우린 때때로 비움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비움은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는 것을. 감독은 자신이 읽고 있는 낡은 칼 융의 책을 보여주면서 ‘그러나 그 비움은 내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바깥에도 존재한답니다.’ 하고 덧붙였다.


영감을 얻기 위해 매일 이 카페에 온다는 그 감독. 프로이트는 자아에 대해 역설한 반면 칼 융은 영혼에 대해 이야기했다면서,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이어나가 ‘그게 무슨 말인가요?‘라고 새로운 대화의 포문을 열기 직전, 나와 친구가 시킨 라떼가 도착했고 거기에서 이 뜻밖의 대화는 끝이 나버렸다. 감독이 내게 ’내 말을 이해했나요?‘라고 재차 물었을 때 ’아니오, 더 설명해주시겠어요?‘라고 호의와 호기심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정말 흥미로운 대화가 되었을 텐데, 난 아마 몇 시간이고 끄덕임과 질문을 번갈아가며 감독이 하는 말을 이해하려 애썼을 것이다. 문득 그 감독이 이후에 어떤 작업을 할지 궁금해진다.


내가 작은 영감을 줄 수 있었을까?


내가 좋아했던 건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관광지가 아닌, 그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외부인의 눈으로 관찰하는 건 언제나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다.


오늘은 마음에 드는 장면을 발견했다. 엄마와 함께 공부거리를 들여다보는 작은 아이였다. 숙제를 도와주는 거였지 싶다. 지하철과 숙제가 어색한 조합인 만큼, 내 편견일 수 있지만 그 ‘학습’을 ‘도와주는’ 엄마에게서는 따뜻함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일상 속에서의 작은 배움들을 많이 마주쳤다. 내겐 에펠탑보다 사진에 담고 싶은 장면들이었다.


오르세 박물관에서는 현장학습을 온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 무리를 보았다. 커다란 그림 앞에 앉아있는 그 학생들은 모두 하얀 노트를 손에 들고 뭔가를 적거나 그리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일어나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나와 다른 관람객들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생각을 발표했다. 선생님 중 한 분은 목을 앞으로 죽 내고 그 학생에게 연신 끄덕임으로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하는 이유는 이것은 사진 한 장으로는 남지 않는 입체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페라 가르니에에서는 태양의 방을 지나 무용실 아래에 위치한 공간에서 이런 장면을 발견했다. 안내 책자를 접어 그 공간의 천장을 만들어보는 여러 무리였다. 그런 방법으로 관람객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방식도 뛰어나다고 생각했지만, 더 신기했던 건 그들의 자연스러움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스러움이란, 내가 그때까지 파리에서 본 것들이 쌓여 내 머리는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고 느낀 것이다.


학교는 배우는 곳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곳이다. 누구나 학생이 될 수 있고, 선생이 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친구가 될 수 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의 나라에서 관람자의 시선이 획득한 여행 장면은 바로 배우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과 그 열망이 녹아있는 그들의 삶이다.


아, 내가 그들과 서너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번씩 의견을 보태가다가 카페 종료 안내나 성당 종소리에 모든 말소리가 해산되는 그런 경험을 해볼 수 있다면..


그렇게 사람들이 파리를 파리로 만든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이민자들에 대한 파리의 고민에 공감을 몇 점 붙여보았다.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면, 새로운 삶의 방식이 들어오면, 전통에서 피어나던 파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앞으로는 어떤 도시가 되어갈 것인가. 파리지앵은 누구인가. 공존이 답이라면 보존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공유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흐트러진 머리, 자연스러운 화장, 무심한 눈빛을 매력있게 만드는 그 무언가.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언어. 마치 음악 같이 도시 곳곳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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