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빈에서 뮌헨으로 가는 기차 안이었다
2024.02.07 메모
세상모르게 자다 기차 안내 방송이 날 깨웠다. 기차 창밖에는 내가 상상하던 풍경이 함께 달리고 있었다.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카메라 렌즈에는 영 잘 잡히지 않아 이 순간을 기록하려 다이어리를 꺼냈다가 펜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어폰에서는 재즈가, 내 얼굴로는 따뜻하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노란색의 햇살이 나와 동행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옳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옳음 선택이란, 교환 학생을 1년 하기오 한 것을 반으로 줄인 것을 말한다.) 절대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지만, 내 생각들을 다시 짚어보고 기억해 보니 이게 올바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을 앞으로 반년 동안 더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그러기도 전에 질렸을 것이다. 찰나이기에 아름다운 순간들을 나는 안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에서 지난 6개월이라는 시간도 창밖 풍경처럼 찰나이기에 아름답게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결코 잡을 수 없는 것이라 아쉽지만, 그 부족함이 나의 기억들을 미화시키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실어준다.
다이어리를 뒤적여보니 예술과 세상의 접점을 가능한 많이 경험하고 싶다는 목적을 위해 지금 내가 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의 목적이 매일 내게 보이진 않지만 난 몸이,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게 맞다. 내가 무슨 길을 가든 난 나의 목적을 실현할 것이고, 세상에 유용한 사람이 되어 유의미한 족적을 남길 것이다.
꿈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이상성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한국이 문화예술 강국이 되는 일에 이바지하고 싶다. 문화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예술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다. 내가 다녀본 나라들처럼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인프라가 탄탄하고 사람들이 예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그렇게 하다가 한국 하면, 예술의 나라, 내가 궁금해하는 문화가 있는 나라가 떠오르면 좋겠다. 그것이 자산이다.
그러니 더 많은 나라들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경험할 것이다. 큐레이팅 경험을 쌓을 것이다. 더 많이 공부할 것이다. 조용했고, 모르는 사람에게 미소를 띠는 여유를 가진 오스트리아에는 다시 갈 것이다. 어쩌면 외국의 큰 박물관에서 한국 전시 부분을 맡는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시 공간을 디자인하는 공간 디자이너가 될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환경과 약간의 친절이 있다면 난 살아갈 수 있다. 적응할 수 있다. 적어도 세상 어느 곳에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커피와 빵을 먹을 수 있다. 마음이 복잡하면 훌쩍 떠나 마음을 정리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가능성이 한 번에 오는 것은 아니기에 당장에 가장 가까운 가능성으로 가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다음 가능성이, 기회가 날 찾아올 것이다. 난 이 마음을 잘 다듬어가고 있다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임무를 맡았다.
어쨌든 나만의 인생, 정답은 없다. 내가 더 맞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날 던지고, 변명 없이 최선을 다하자. 단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와 사랑은 항상 챙겨 다니자. 그것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