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리공식으로 바라본 AI
가우탐 바이드의 '투자도 인생도 복리처럼( The joys of compounding ) ' 이란 책을 읽으며,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읽었다. 투자서 보다는 인문서적 같은 느낌인 이 책을 읽은 후 복리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복리라고 이야기할 때면 모든 중심에 돈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복리라는 것이 돈/투자를 벗어나 우리를 둘러싼 많은 영역에서 중요한 원리임을 알 수 있었다.
복리 공식은 단순하다.
A = P (1 + r)ᵗ
내가 가져가는 최종 자산(A)은 초기 투자금(P), 수익률(r) 그리고 시간(t)이라는 세 가지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이 단순한 수식은 오랜 세월 재테크의 문법이었다. 책의 제목처럼 복리라는 공식은 투자를 떠나 우리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지적 성장, 한 사람의 경력, 더 나아가 한 인간이 세상에 쌓아 올리는 모든 결과물은 이 공식을 통해 확대, 발전해 나갈 수 있다. 물론 복리가 아닌 단리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더 직관적이고 쉽다. 복리는 직관적이지 않다. 아인슈타인은 복리를 세계의 8대 불가사의라고 말하면서, "복리를 이해하는 자는 돈을 벌고, 그렇지 못한 자는 돈을 지불한다."는 말을 남겼다.
8대 불가사의라고 말한 복리는 결국에는 얼마를 가지고, 무엇을 가지고 시작했는가(P)? 얼마나 성장했는가(r)?, 그리고 얼마나 오래 시간 지속했는가(t)?라는 세 변수의 곱이다.
AI, AGI, ASI 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가 넘쳐난다. 이 모든 개념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 AI라는 기술이 복리라는 공식에서 적어도 두 개의 변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첫 번째 AI는 시간(t)이라는 변수를 다르게 해석한다. 다르게 해석한다기보다는 기존에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프레임을 넘어선다. 학습의 속도, 숙련의 과정등 우리가 몇 년, 몇 달, 혹은 며칠이 걸리는 일을 우리가 생각지 못한 시간으로 압축한다. 이런 변화는 생산성의 기준, 효율성의 기대를 변화시킨다. 어떤 일을 묵묵히 해오던 성실함에 대한 해석도 바뀔 수 있다. 시간을 자본화한 것이 경력이라면, AI는 복리의 변수 시간(t)을 가속화 함으로 경력이 가져가는 가치를 최소화한다. 파인 튜닝은 우리가 기존에 숙련이라 부르던 이름의 AI 버전일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한 시간이 마치 석기시대의 한 시간 하고는 다른 것처럼 AI시대의 시간(t) 은 새로운 속도로, 새로운 스펙트럼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즉, 시간은 인간보다는 AI 편이다.
두 번째 변수 수익률(r)이다.
생산성, 효율성은 자본주의, 산업화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중요시 여기는 지표들이다. AI는 같은 한 시간을 일해도 산출되는 결과물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 문서 생성, 코드 개발 등 기존 작업에 대한 생산성이 수십 배로 증폭된다. 많은 미국의 BigTech 기업들이 직원을 해고하고 AI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은 이 수익률을 증폭하기 위한 방법이다. 물론 이 AI와 결합한 개인의 성과 곡선도 가파르게 치솟는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축, 수익률이라는 축만 본다면 AI의 기술은 압도적이고,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와 증폭임은 부정할 수 없다.
전문적인 지식의 가치가 떨어진다. 기술이 내 경험을 대체한다. 대체함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낸다. 이쯤 되면 많은 이들이 질문을 던진다. 내 경력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내 전문성은 더 이상 희소하지 않은지, 이런 불안은 시간과 수익률이라는 측면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변수는 초기 투자금(P)이다. 당신의 투자금(P)은 무엇이고, 얼마인가?
아무리 뛰어난 수익률이 있어도, 아무리 긴 시간이 주어져도, P가 0이라면 결과는 0이다. 곱셉의 세계, 투자의 세계에서 0은 모든 것을 무력화시킨다. 수익률이 100%든 1000%든, 시간이 10년이든 100년이든, 그 결과에 0이 곱해지면 여전히 0이다. 복리의 시작은 초기 투자금 (P)이고, 복리의 진짜 주인공은 P라는 사실이다.
AI 시대의 P는 무엇인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P는 무엇인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것, 학습된 지식의 양이 아닌 경험과 사유의 깊이다. 실패한 경험, 헤어진 아픔, 홀로 견뎌낸 시간들 이런 경험들이 만들어낸 나만의 삶의 두께, 오직 이 지구라는 별에서 자기 자신이 되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관점이 AI 시대의 초기투자금(P) 다. 시작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 바로 그 지점이 AI 시대 P가 있어야 할 자리이다. 뿌리 없는 성장은 허수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수익률이 높고, 오래 지속한다 하더라도 무엇을 위한 것인지, 우리의 삶에 가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모든 수익률에, 오랜 기간 지속된 결고에 0을 곱하는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 말했다. 연약하다. 하지만 존재에 대한 이유를 묻는다. AI 시대를 복리 공식에 비유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 인간은 AI에 비해 느리고, 부정확하며, 쉽게 지친다. 수익률에서도, 시간에서도 기계에 밀린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을 투자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설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 그 질문을 하는 존재, 그 질문들이 P를 만든다. 그리고 P를 가진 자만이 복리의 세계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다.
빠르게 새로운 모델이 나온다. 더 정교한 에이전트를 구성한다. 더 높은 생산성을 이야기한다. AI에게 묻는 질문의 개수, 토큰의 사용량이 그 사람의 역량이 된 듯하다. 토큰의 소비량이 곧 생산성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AI 시대의 자산은 지식의 양이 아니다. 사유의 깊이다. 그리고 사유는 언제나, 어디까지나, 인간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AI 시대의 화폐는 에너지가 아니다. 토큰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 사유하는 인간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