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어보고자 마음먹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8부작 시리즈로 제작된 “트로이, 왕국의 멸망”이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트로이]와 색다른 해석이었고 등장인물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가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헬레네 그녀의 처신과 행동이었다.
자유연애와 페미니즘이 팽배한 현세의 시각에서도 헬레네는 불륜을 저지른 유부녀로서 스파르타를 떠나 트로이로 망명한 그의 행실은 사회적 지탄을 받아도 마땅한 처지가 아니던가? 게다가 그녀로 말미암아 10년간의 전쟁이 치러지는 이 사달이 나게 된 것 아니던가?
그러나 헬레네는 자신의 전 남편인 메넬라오스 왕(王)과의 결혼생활에서 행복을 느낀 적이 없었고, 파리스와의 만남은 神이 주선한 것으로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한 길이었음에 매우 당당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주민들이 기아에 허덕일 때 나라의 곳간을 열어 백성들을 진휼할 것을 건의하기도 한다.
이는 매우 현대적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리아스라는 작품에서 과연 헬레네는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일리아스는 호메로스라는 구전작가에 의하여 서술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총 24권으로 이루어진 대 서사시(敍事詩)이며 흔히들 서양 문학의 효시라고 칭송하기도 한다.
우리가 아는 트로이아는 당시 일리오스라고도 불리었는데, 일리아스란 말은 일리오스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먼저 일리아스 즉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되는 사건으로 2개의 결혼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중에서 시기적으로 앞서는 헬레네의 결혼이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데, 헬레네는 제우스와 레다 사이에 태어난 딸이며 스파르타의 공주의 신분이다.
절세의 미녀로 성장한 헬레네에 구혼하고자 전역에서 왕과 왕자들이 모여들었고, 쟁쟁한 영웅들이 질투심 때문에 서로 다투게 될 것이 두려워서 튄다레오스는 선뜻 사윗감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구혼자 중 하나였던 오디세우스는 꾀를 내어 “구혼자들 중 누가 헬레네의 신랑으로 낙점되든 승복하고, 누군가가 이 결혼을 훼방할 경우 함께 힘을 합쳐서 싸우도록 맹세를 하자”는 것이며 튄다레오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구혼자들로부터 맹세를 받아냈다. 이것이 후에 트로이 전쟁의 단초가 된다.
헬레네의 이부자매(異父姉妹)인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미케네 왕국의 아가멤논 왕과 결혼을 하였고, 당시 미케네는 그리스 반도의 패권국이자 문명의 중심국가로서 스파르타는 정략적인 결혼을 맺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튄타레오스는 사윗감으로 아가멤논의 동생인 메넬라오스를 택하여 헬레네와 결혼을 올리도록 함으로써 후에 스파르타의 왕은 메넬라오스가 즉위하게 된다. 이 같은 기저에 깔린 구도는 메넬라오스가 오딧세우스의 맹세를 명분으로 내세워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그리스연합군을 조성하지만, 메넬라오스가 트로이 전쟁을 벌인 건 단순한 가정사와 명예의 문제만이 아닌, 스파르타의 왕위 정통성을 위해서 헬레네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또 다른 결혼은 바로 아킬레우스의 부모가 되는 테티스 여신과 인간 펠레우스와의 결혼이다. 테티스 여신은 매우 빼어난 용모를 가졌는데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맘에 두고 있었지만, “테티스의 아들이 후에 그의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예언이 있어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테티스를 포기하게 된다. 이런 사유로 불멸의 존재인 테티스는 필멸의 존재이자 인간인 펠레우스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참고로, 테티스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갓 태어난 헤파이스토스를 구해준 인연으로 그는 테티스를 항시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아들 중 하나인 파리스(본명은 알렉산드로스)를 결혼식에 참석하도록 파견한다. 신과 인간의 결혼식임에 수 없이 많은 하객들이 초대되었지만, 하필이면 불화(不和)의 여신 에리스를 명단에서 빠뜨리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에리스는 결혼식장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새겨진 황금 사과를 던져놓고 사라진다.
*당시 파리스를 양치기 신분으로 해석하는 경우와 트로이의 왕자 자격이라고 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후에 헬레네가 재물을 가득 실은 함선으로 함께 트로이로 망명하는 것으로 봐서는 후자가 더 적절한 해석이라 생각한다.
안 그래도 한낱 인간과 결혼해야 하는 여신 테티스로서는 가뜩이나 서러운 날인데, 결혼식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저마다 이 황금 사과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던 헤라, 아테네,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급기야 제우스의 판정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상황 판단에 능한 제우스는 미녀는 미남이 알아보는 법이라며 당대 제일의 미남 파리스에게 공을 넘긴다. 이에 세 여신은 파리스를 찾아가 자신을 뽑아달라며 각자 달콤한 제안을 한다. 헤라는 왕권을 약속했고, 아테네는 전쟁의 승리를 약속한다. 파리스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에게는 아들이 50명, 딸이 12명이 있었는데 왕위 계승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그에게 헤라의 약속은 매력적이었고, 헥토르나 트로일로스같은 쟁쟁한 형들 밑에서 기를 펴지 못하던 그에게 아테네가 내건 조건 역시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노라 약속한다. 이에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고, 파리스는 세계 제일의 미녀 헬레네를 아내로 얻는다.
한편 패배한 헤라와 아테네는 이 일로 앙심을 품고 그 증오심을 모든 트로이아인들에게로 확산시키니 동 작품에서 이 여신들이 앞장서서 희랍군을 돕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아프로디테의 약속을 실현하는 데에는 작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헬레네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였고,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파리스는 자신을 환대해준 메넬라오스를 배신하고 그녀를 트로이아로 데려 온다. 많은 재물과 함께...
메넬라오스는 이 사태를 외교적 역량으로 해결해 보기 위해 오딧세우스와 함께 트로이아에 가지만 헛수고였고, 이렇게 10년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일리아스의 시작은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와의 갈등에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가멤논은 전투에서 취한 전리품의 일종이자 명예의 선물로서 크리세이스라는 여인을 취하게 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여인은 아폴론 성전의 사제(司祭)인 크리세스의 딸이다. 이는 아폴론을 모욕한 것으로 군영에는 역병이 돌아 군사들이 쓰러져 가기 시작한다. 이에 크리세이스를 돌려주자는 간청이 빗발치자, 그녀를 사제 크리세스에게 돌려보내되, 대신 아킬레우스가 전쟁의 공로로 받은 브리세이스로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도록 한다.
브리세이스를 각별히 아꼈던 아킬레우스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지만 군영의 기강을 참작하여 아가멤논에 대항하기보다는, 자신의 군사 모두를 전선에서 철군하도록 하고 자신 또한 진영 밖으로 나오지 않기로 한다. 일종의 파업이자 침묵시위라 할 수 있다.
아킬레우스의 부대가 빠져나가는 시점부터 희랍군의 전세가 기울기 시작하고 트로이아의 맹장 헥토르의 활약은 눈부시게 빼어나 희랍군들을 마지막 방어선까지 몰아 부친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와중에 아킬레우스의 오른팔이자 각별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는 더 이상 사태를 방관할 수 없어 아킬레우스에게 ‘그의 무구(武具)를 빌려 줄 것’과 트로이아군에 대적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아킬레우스는 그의 간곡한 요청에 마지못해 허락하지만 절대 적의 진영 깊숙이 들어가지 말 것을 다짐받는다. 파트로클로스는 오랜만에 맛보는 전투의 짜릿함을 만끽하며 거침없이 트로이아군에 반격을 가하다가, 결국 트로이의 최고 용장인 헥토르와 마주하게 된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보고 내심 겁을 먹지만, 사내다운 용기를 내어 죽음을 불사하고 일전을 치르게 된다. 이렇게 파트로클로스의 운명은 막을 내리게 되고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벗겨 승리를 자축한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아킬레우스의 슬픔은 물론, 그의 어머니이자 여신인 테티스 또한 비탄에 잠기는데, 그녀가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가 아킬레우스에게 새로운 무구를 만들어줄 것을 간청하는 대사를 보면, 그간에 진행된 사건과 아킬레우스의 운명을 연상할 수 있게 된다.
“크로노스의 아드님 제우스께서 다른 바다 여신들은 다 놔두고 나를 한낱 인간에 불과한 아이아코스의 아들 펠레우스와 짝지어놓았고, 저는 비록 조금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인간과 나누는 잠자리마저도 견뎌냈어요. 그 사람은 서글픈 늘그막에 기운을 잃고 궁전에 누워 있는데, 제겐 조금 또 다른 일이 있어요.
그 사람은 제게 아들을 낳고 기르도록 했고, 영웅들 중에서도 빼어난 그 아이는 새싹이 자라듯 무럭무럭 커갔지요.
저는 그 아이를 정원에 심은 나무처럼 길러냈고 트로이아인들과 싸우라고 양 끝이 흰 배에 태워 일리오스에 보냈어요.
하지만 저는 그 애가 펠레우스의 집을 향해 고향으로 오는 것을 두 번 다시 반겨 맞을 수 없게 되었어요. 더구나 그 애가 제 곁에 살아 숨 쉬며 헬리오스의 빛을 보고 있는 동안에도 고통을 겪고 있는데, 제가 가서 돌보아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네요. 아카이아인(그리스인의 별칭)들의 아들들이 그 아이를 위한 명예의 선물로 한 소녀를 골라 주었는데 명령을 일삼는 아가멤논이 그 손에서 그녀를 도로 앗아 갔지 뭡니까? 해서 그 아이는 그녀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며 가슴속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요. 그런 와중에 트로이아인들이 아카이아인들을 뱃고물까지 밀어붙이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렸답니다. 그래서 아르고스인(그리스인의 또 다른 별칭)들의 원로들이 그에게 빌며 이름난 선물들을 수없이 읊어 내렸지요.
그러나 그 아이는 그 자리에서 그들의 궤멸을 막아주기를 거절했고 대신 파트로클로스에게 자기 무장을 입힌 다음 많은 병사들을 그에게 붙여 전쟁터로 내보냈어요.
그들은 온종일 스카이아이 문을 에워싸고 싸웠고 바로 그날 도시를 함락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만약 엄청난 피해를 입힌 메노이티오스의 용맹한 아들을, 선두 대역에서 아폴론이 살해하고 헥토르에게 영예를 내리지만 않았던들!
제가 당신의 무릎 앞으로 나온 건 바로 이 일 때문입니다. 명 짧은 제 아들을 위해 방패와 투구 그리고 꼭 맞는 발목 덮개가 달린 아름다운 정강이받이와 가슴받이를 혹시 내주실 의향이 있나 해서요. 그 아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은 그에게 의지가 되어주던 벗이 트로이아인들에게 제압당하면서 잃어버렸고, 그 아이는 괴로운 심경을 어쩌지 못해 흙바닥 위에 드러누워 있답니다.“
직접 자신의 거처에까지 찾아와 애원하는 테티스의 요청에 헤파이스토스는 아주 특별한 무구를 만들어 아킬레우스에게 전해지고 이는 그가 천하무적의 용장이 되는데 일조한다.
이때 헤파이스토스 거처에 관한 서술 장면이 나오는데 기원전 1,000년경에 마치 현대 사회의 AI를 기반으로 하는 로봇 혹은 인조인간에 대한 묘사가 있어 매우 흥미롭다.
“그는 궁전의 잘 세운 벽을 따라 세워놓으려고 마침 세발솥 스무 개를 만들어 놓은 참이었는데 하나하나마다 바닥에 황금 바퀴를 달아놓아 저절로 신들의 회의장까지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도록 해놓았으니 보기에도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는 다리를 절며 문밖으로 걸어 나왔다. 황금으로 만든 시녀들이 주인을 거드니, 살아 숨쉬는 소녀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횡경막 속에 슬기가 있었고, 목소리와 근력도 있었으며 죽음을 모르는 신들에게서 일들도 배워 알고 있었다. 이들은 주인의 발치에서 바지런히 움직였고, 그는 더딘 걸음으로 테티스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서 찬란한 의자에 앉았다.“
테티스로부터 무구를 전해받은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위해 헥토르를 찾아 나선다. 심지어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는 곧이어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지리라 직감하지만 이에 아랑곳 않고 헥토르를 맞아 그를 무참히 살해한다. 그리고 그의 주검을, 그의 양발 뒤꿈치를 뚫어 줄로 묶어 자신의 진영으로 끌고 간다. 그의 시신을 최대한 욕보임으로써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죽음에 앙갚음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쉽사리 풀리지 않는 분노로 수차례 더 헥토르의 시신에 해코지를 하지만 아폴론의 비호로 인해 헥토르의 시신은 형상을 잘 유지하게 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트로이의 프리아모스왕은 장남인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고자 혈혈단신으로 아킬레우스의 진영으로 잠입하여 마차 가득 싣고 온 보물들을 몸값으로 바치며 그에게 무릎 꿇고 간청을 한다.
자신의 분신을 잃어버린 똑같은 처지의 두 사람은 조우하자마자 상대를 알아보고 뜨거운 울음을 쏟아낸다.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 왕에게 극진히 음식을 대접하고 헥토르의 장례를 치를 12일간의 휴전을 제안한다.
아킬레우스는 다시 개전(開戰)이 되면 트로이의 멸망과 함께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헥토르의 시신과 함께 트로이로 돌아온 프리아모스는 백성들과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하는 것으로 동 작품은 끝을 맺는다.
아킬레우스의 죽음은 일리아스에 나오지 않고 여러 수사적 표현으로 암시될 뿐이다.
그리고 트로이의 목마도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아킬레우스를 위한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노여움을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노여움을! "
※P/S
1. 헬레네의 이부자매(異父姉妹)인 클리타임네스트라의 기구한 운명에 관한 신화가 있다. 헬레네는 제우스와 레다의 딸이고, 클리다임네스트라는 스파르타 왕 튄다레오스와 레다 사이에 태어난 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부자매가 되는 것이다.
클리다임네스트라 또한 헬레네에 버금가는 미모의 여인이었고,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그녀의 기존 남편과 자식들을 모두 살해하고 강제로 그녀와 결혼을 한다. 아가멤논과의 사이에 오레스테스와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등을 낳았다.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온 아가멤논은 헥토르의 여동생 카산드라를 첩으로 삼았고, 한편 클리다임네스트라는 정부(情夫) 이아기스토스와 음모를 꾸며 아가멤논과 카산드라를 죽이고 아이기스토스가 미케네의 왕이 되도록 한다. 이에 아가멤논과 사이에 태어난 엘렉트라는 남동생 오레스테스와 힘을 합쳐 자신의 생모인 클리다임네스트라를 살해한다. 여기에서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용어가 파생되었고, 이는 여성이 모친을 증오하고 자신의 부친에게 성적 애착을 느끼는 증상을 말하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클리다임네스트라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가장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다.
2. 귀신이 곡(哭)할 노릇이라는 말이 있다. 귀신조차도 전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원통해서 크게 울 만큼 감쪽같고 영문 모를 노릇이라는 것인데, 귀신도 모를 일을 어찌 하찮은 인간이 매사를 일일이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또한 신의 조화(造化)라는 말도 있다.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자연의 이치를 어찌 다 깨닫겠는가?
살다보면 우리 스스로도 느낄 만큼 신의 기운을 받아 나도 모르게 기백이 살고 눈이 번쩍 뜨이는 그런 순간이나 시기가 있다. 누구나 다 그런 경험을 한 번 씩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우린 우리 자신의 스스로 빼어난 능력이라고 착각하며 살기도 한다.
우린 신의 조화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일 뿐 우리 자체가 발광(發光)하는 객체는 아니잖은가? 신화(神話)가 주는 교훈을 되새기다보면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아옹다옹 공들여 이룬 것도, 그 찬란함도 잠깐이요, 돌아보면 찰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종교의 가르침과 흡사한 교훈을 얻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종교는 교리가 있어 그에 빠지게 되면 광신자가 되고, 교리가 오히려 발목을 잡아 사유와 행동의 세계를 제한하는 갈등과 분쟁의 소지가 있지만, 신화는 세상사의 구속에서 해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광활한 상상과 심지어 유머까지 곁들일 수 있어 좋다.
아무튼 우린 귀신이 곡을 할 정도로 황당한 경험도 하고, 신의 경지에 오른 듯 착각도 하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