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어떻게 갔나.
전생에 영미권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영어의 음파는 한참을 내 귓가에 윙윙 맴돌다가 귓속으로 들어온다. 꼬부라지는 발음에 취해있는 동안 해석할 타이밍을 놓쳐서 알아듣지 못하기 일쑤였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꼈다. 심지어 영어로 욕을 들었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 땐 변태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난 아무도 전생에 미국 사람이었을 거야'
여자 남자 구분 없이 영어로 말하는 사람들은 다 멋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영어소리가 섹시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꿀렁꿀렁 이어져 가는 억양과 음성이 주는 매력에 한참 빠져있었다. 영어에 환호했지만 영어공부는 잘하지 못했다. 홀린 듯 소리에만 심취해 있었던 탓이라고 해 두겠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 서울에 가서 자취하겠다고 다짐했다. 드센 부산 사투리가 편하지 않아서였다. 표준어를 쓰는 윗지방 남자들은 부드럽고 스위트할 거라는 망상이 나의 빠른 독립을 부추겼다. 외국인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저변에 있었지만 내가 영어가 안되니 일찌감치 접었다. 서울 남자랑 결혼할 거라는 목표를 갖고 상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젠가 만날 서울 남자 앞에서 사투리를 쓰긴 싫었다. 21살에 서울말을 배웠다. 거울을 보며 서울여자들이 하는 말을 따라 했다. 낯간지럽고 익숙하지 않았지만 연습을 계속했다. 그 후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부산사람이라는 걸 밝히면 꽤나 놀라워했다.
“사투리를 전혀 안 쓰시는데요?” “어릴 때 올라온 거예요?”
“서울말 하기를 연습했어요”
"연습이요? 그게 되나?"
사투리를 완벽하게 고친 건 아니지만 서울사람과 있을 땐 자동으로 표준어가 나오고 부산역에 도착하면 의식하지 않아도 사투리가 저절로 나온다. 가족과 고향 친구 이외의 사람들을 만날 땐 철저히 서울사람이 된다. 드센 억양을 줄이고 부드러운 인토네이션을 연습한 결과였다. 뿌듯한 반면, 그 열정으로 영어를 배웠으면 한국과 외국을 드나들며 살았을 거란 생각을 종종 한다. 어쩌면 국제결혼도..
피나는 노력 끝에 20년간 써왔던 사투리를 고치고 서울말을 구사하게 되었다는 경험은 언어습득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영어도 노력하면 원어민 수준으로 대화도 가능하겠지. 뭐'
앞뒤 가리지 않는 자신감이 생긴 까닭에 머나먼 땅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경험이 경험을 낳고 두려움을 버리게 한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