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이 Sep 13. 2024

Lonely

autumn

너를 앉혀두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술에 취해 제 삶이 한 편의 소설이라고 떠들어대던 나이 든 남자처럼

그 사람의 마음을 이제 와 알 것도 같다. 외로운 사람.

그간 아무도 들여다본 적 없이 잡초가 무성하고 먼지와 머리카락이 한데 뭉쳐 굴러다니던 그 사람의 마음.

마음이 벌어질 때마다 창피하여 자꾸 움켜쥐었을 그 남자의 손.

당신 마음이 누추하다고 생각하죠? 아뇨, 아뇨 제 마음도.


내 가슴을 확 젖혀서 그 안을 다 보여주고 싶다. 누군가 그것을 보고 진단을 내려주는 것이다. 이건 버리고 저걸로 채웁시다. 화분을 좀 들여볼까요? 연못을 팝시다. 흰 물고기를 풀어놓는 것이 좋겠어요. 정이씨는 흰색을 좋아하니까. 책을 좀 꽂아놓죠. 음악은 이걸로. 조명은 너무 밝지 않게.

그러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울적할 때면 누군가 종일 나를 쓰다듬어 주는 상상을 했다. 잘생긴 젊은 총각이 만나자는 예쁜 여자들을 마다하고 고양이인 나를 쓰다듬는 것이다. 볕 좋은 툇마루에 앉아 옆으로 누워 나를 바라보며 큰 손으로 머리부터 등까지 기분 좋게 쓰다듬어 주는 것이다. 나는 둥그렇게 등을 말고 있다가 그 손길에 점점 그와 똑같은 자세가 되고. 그런 상상을 하면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 사그라드는 것 같다.


왜 나의 사랑은 지나고 나면 사막과 같이 되는 걸까.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나는 사람이 한 줌 재가 되는 것을 봤다. 분명 곱게 바로 누워있었는데 도자기나 굽던 그 큰 가마에 사람이 들어갔고 재가 되어 나왔다.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나누었던 말과 눈빛과 사랑이 담긴 시간들이 결국 재가 되어 나오다니. 그게 슬펐다. 그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보다. 그래서 지나간 사랑도 사막처럼 느껴지는 걸까.

모든 것이 모래처럼 어차피 재가 돼 버릴 거라서?


한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혼자 손가락을 빨고 이따금씩 발을 첨벙거리면서 놀다가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관계 맺는다. 관계망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세상과 헤어질 때는 처음처럼 혼자가 된다. 혼자다. 혼자가 맞다. 지하철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쏟아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 확실해진다. 뭐 그게 나쁘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땐 외로움이 특별해 보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것도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는 생각이다. 그저 어머니 뱃속에서 혼자 놀던 것처럼 밖으로 나와서도 완벽한 1인칭 화자, 주체가 되어 세상에서 놀다 사라지는 거라고.


오랜만에 어렸을 때 하던 상상을 이어해 본다. 툇마루에 남자와 나란히 앉아있는 고양이가 된 나. 가을볕 아래서 남자가 쓰다듬어주는 손길을 느끼면서 그 젊은 남자의 온 사랑을 독차지하고나서야 나는 기지개를 켜고 사뿐히 툇마루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사라지는 것이다. 어디 들를 데라도 있다는 듯이. 해가 넘어갈 때즈음 멀리 그 남자가 내 이름을 부르면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겠지. 그렇게 심플하고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아가자고 마음먹는다. 가을날의 여느 고양이처럼.

작가의 이전글 꽈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