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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수다 왕언니 Jun 28. 2023

이제는 다채로움을 말할 때...

[다섯째 아이_도리스 레싱_민음사]를 읽고...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제 삶이니까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에서...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던 박은빈 배우는 수상소감으로 이 대사를 인용했다. 그녀는 자폐인을 연기하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었다고 한다. 대신 사람들이 좀 더 친절한 마음을 품고, 각자가 갖고 있는 고유의 특성을 다름이 아닌 다채로움으로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은 병설유치원을 졸업했다. 교육비에 급식비까지 돈 한 푼 내지 않고 양질을 교육을 받았다. 사립유치원에 비해 영어나 한글 등 학습적인 부분이 부족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다양성교육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아이 유치원은 특수학급이 있었다. 신체장애와 자폐가 있는 유아들도 함께 교육을 받았다. 


특수학급과 일반학급 아이들은 종종 만나서 함께 수업을 했다. 간단한 놀이식 체육, 음악 수업뿐만 아니라 요리수업을 함께 했는데, 나도 몇 번 학부모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아이들과 간단한 간식을 만들어서 나누어 먹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억이 새록새록 남아있다. 아이들은 사랑스러웠다.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내가 갖고 있던 낯섦에서 오는 불편함을 지울 수 있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해보려는 노력이 가상했고, 마냥 도와주려고만 했던 내 손이 부끄러웠다. 


인류의 진화에서 친화력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가 공저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이다. 이 책은 인간에게는 나와 다른 사람을 '비인간화'시키는 본성이 있다고 말한다. 비인간화는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에 저자는 다양성 교육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즉 자주 만나고 접하는 것이다. 나치즘에 대항하여 유태인들을 도와줬던 유럽인들의 대부분이 그들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섯째 아이'는 가정생활이 행복한 인생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이 중산층 가정에 강인한 체구에 힘이 세고 성장이 빠른 벤이 태어난다. 그는 폭력적이고 남과 다른 외모를 갖고 있다. 이 가족에게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의사와 교사들은 벤은 정상범위안에 있다고 말한다. 똑똑하지는 않지만 노력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아빠인 데이비드는 벤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엄마 헤리엇은 아이를 존재 그대로 사랑하지 않는다. 다른 형제들도 벤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불편해한다. 


급기야 가족은 벤을 요양원에 보내버린다. 하지만 모성애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명확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헤리엇은 벤을 다시 데리고 온다. 벤이 다시 돌아오고 난 뒤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편은 점차 워커홀릭으로 변하고, 나머지 네 아이들은 기숙학교로 할머니에게로 떠나버린다. 그래서 엄마 '헤리엇'은 가정파탄의 원인을 자신에게 두며, 자책한다.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 벤은 또래 아이들과 잘 지낸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들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들은 친구들이다. 모두 떠나고 외롭게 큰 집을 지키는 헤리엇은 벤도 친구들과 함께 떠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다소 아쉬워하는 헤리엇의 모습이 외로워 보였다. 다복한 가정을 통해 행복한 인간이 되고 싶었던 이 엄마에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엄마는 벤을 특성을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다. 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과 교육방법을 배우려는 의지가 부족했다. 가족들도 벤의 특이성을 이해하고, 명확한 지시와 교육을 더했다면 벤과 함께 일상생활을 잘 영위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더라면 가족이 해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첫 번째 단추부터 잘못 잠가졌던 것이다. 


현재의 인권사상은 레싱이 이 책을 출간한 1988년보다 더욱더 발전했다. 인권을 넘어 동물권까지 존중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지구 어디엔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벤'도 다름으로 차별받고 있을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공고하며, 약자에 대한 폭력은 터부 하는 문화가 팽배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벤들은 20세기의 그들보다 조금은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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