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_이디스 워튼 저_민음사]를 읽고...
이디스 워튼의 여름을 읽으면서 나는 '파친코'의 선자를 떠올렸다. 순수하고 어린 소녀가 여자가 그리고 어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이 읽는 내내 울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는 여성투표권이 인정되고, 페미니즘 운동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소녀가 살았던 변방은 여전히 가부장적인 가정과 사회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 그녀들은 한 남자를 사랑했고, 감정과 본능에 이끌려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다. 선자는 고한수의 후처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목사인 백이삭을 따라 일본으로 떠나고, 채리티는 낙태의 유혹을 떨치고 자신을 키워준 로열목사와 결혼한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에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가 있다. 리얼 육아예능 프로그램인데, 그중에 제일 눈에 뜨이는 출연자는 단연코 사유리다. 그녀는 자발적 비혼모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았다. 서양인의 정자로 태어난 그녀의 아들 젠은 금발머리로 서양인의 유전자를 담고 있다. 처음 그녀가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크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그램 담당자들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출연을 종용했고,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었다. 나도 젠의 성장을 응원하고 사유리가 점차 엄마로서 육아의 달인이 돼 가는 모습을 응원하면서 본다.
1990년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닐 때다. 비디오테이프를 만드는 대기업이었다. 그때는 모든 영화를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빌려보던 시대였다. 본사 직원들 중 80%는 남성들이었고, 여직원은 모두 나처럼 고졸이었다. 우리는 유니폼을 입었고, 남자직원들은 입지 않았다. 외부 고객을 상대하는 일도 없는 사무직 직원들에게 왜 유니폼을 입혔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여사원들은 일종의 회사비품이나 소모품 같은 존재로 취급받았던 것 같다. 결혼을 하면 퇴사를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파티션도 없는 뻥 뚫린 사무실은 벽 쪽부터 직급이 높은 순서로 책상이 있었다. 당연히 나의 자리는 문 앞이었다. 남자 직원들은 근무 중에 자기 자리에서 담배를 피웠고, 퇴근 무렵이면 나의 긴 머리카락에서는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3년이나 했다니, 아마 지금 MZ세대들이라면 기염을 토할 일이다.
내가 그렇게 젊음을 보낸 지 30년이 지난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여성권은 놀랍게 성장했고, 어떤 상황에서는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불과 100년 전인데도 불구하고 선자와 채리티는 사유리의 삶을 살 수 없었다. 아빠가 없는 아이를 출산하는 것은 부도덕적이며, 아마 가슴에 주홍글자를 달아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들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쫓겨났을 것은 자명하며, 쫓겨나지 않더라도 공동체의 질타와 욕설을 견뎌내야 했을 것이다.
그녀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결정한다. 아기의 생물학적인 아버지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인류애가 넘치는 백목사나 로열변호사의 협조가 필요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데 어찌하겠는가 20세기는 그런 시대였고, 우리 여성들은 현실을 견뎌왔다. 지금은 21세기다. 얼마 전 영아살해 범죄가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던 일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자발적 의지로 미혼모를 선택하기도 한다. 나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서구 유렵의 복지국가들처럼, 미혼모가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 국가의 도움이 더 넉넉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