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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날 의미있게 보내는 법

광릉요강꽃찾아 삼만리

by 플랫폼

오늘은 부처님 오시는 날, 그리고 어린이날. 그럼, 오늘 하루를 뭐하지. 차라리 부처님 뵈알이나 하러 가야할까. 결정장애는 플랫폼에게 이젠 머언 과거가 된지 오래. 황금같은 휴일을 그렇게 방콕으로 허비할 순 없었다. 오늘의 비상식량인 컵라면 하나, 생수와 온수를 주섬주섬 챙겨들고 룰루랄라 애마를 몰아간다. 오후에 또 비소식이 있다 했으니 더욱 서둘러야 했다. 그래,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부처님도 뵈알하고 승천도 하고.



코드명, 해발고도 750미터


꿈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그리고, 하달된 오늘의 미션명. 해발고도 750미터. 단 자연산만 인정된다고. 정보가 새나가지 않게 쥐도 새도 모르게 비밀리에 진행해야만 한다. 드디어 테이프 커팅은 끝나고 님을 만나기위한 미션은 시작되었다. 올봄에만 벌써 네번째. 3전 4기끝에 오늘은 성공할 수 있으려나. 하늘은 여전히 꾸물거린다. 금새 비가 쏱아진대도 전혀 이상치 않을 분위기. 설상가상 기온마져도 꽤 차갑다.


오늘의 미션명과 목적지는 정해졌고 특수임무라 비밀유지가 성공의 키를 쥐고 있는 상황. 광릉요강꽃찾아 삼만리. 어쩌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는데. 제발 무사히 잘 수행해줘야 할텐데. 까짓것 죽기야 하겠어. 라는 심정으로 중무장해 본다. 찾다 못찾으면 그냥 산천유랑이나 하고 야생화 구경이나 하다 내려오지 뭐. 드디어 간이 배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플랫폼.


비밀의 화원을 향한 첫 헤엄치기가 시작되었다. 바람이 어제보다는 그나마 얌전하다는게 나름 위로가 된다. 일단, 배낭을 둘러매고 첫발을 뗀다. 그런데, 오늘따라 컨디션이 별루다. 감기가 도졌는지 시작부터 목이 칼칼하고 다리도 유난히 후둘거린다. 들머리부터 난관에 부딪치고. 완전 쌩자리에다가 낙엽까지 두툼이 쌓여있어 좀체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 천천히 올라 가지뭐.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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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 남들보다 특별히 뛰어난 재주같은건 아예 없는 그져 평범한 사람이었다. 졸업후 사회라는 바다에 내던져진 후로 적응하는데도 유난히 더듬거리기를 여러번. 그러던 어느날 내 앞에 나타난 구세주. 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다더니만. 산행이라면 그나마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십여년을 악으로 버텼더니 나도모르게 내면에 뚝심이란게 생겨나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처음이 문제였다. 마의 산행시작 30분.


머리쳐 박고 악다구니 써가며 울고싶은 심정으로 한발두발 올랐다. 코가 땅바닥에 닿을 정도의 깔끄막은 여전. 그나마 다행인건 끝까지 오르막은 아니었다는것. 간간히 쉴 수 있는 평지가 나타나 주었으니. 포기하지 않고 한발두발 오르다 보면 언젠간 끝은 있겠지. 해발고도 300여미터에서 시작된 산행이 어느덧 500여미터 언저리까지 닿은 상황. 이렇듯 항상 시작이 반이었다.


오르는중 제비꽃 이파리위에 앉아있는 꾸물이 한마리 포착. 마침 힘들어 쉬고싶던 차에 레이다에 걸려든 꾸물이. AI에게 또 부탁한다. 표범나비일까. 아니면 부전나비 종류일까. AI도 가끔 했갈릴때가 있나보다. 그 어떤 울림조차도 없다. 애매모호한 답변만 장황하게 쏱아낸다. 일단, 동정은 패쓰. 저 위에 님이 날 기다리고 있을테니. 이름모를 새소리 요란하다. 심장박동소리도 쿵쾅쿵쾅.


그렇다면 분명 정상이 다왔다는 증거일텐데. 그러는 사이 오늘의 특별 정보원인 청설모와도 도킹했다. 왜 이제 왔냐며 한심하다는 듯 날 째려본다. 마치 태업도 불사하겠다는 자세. 입이 댓짜로 나와있는 청설모를 달래느라 무진애를 쓴다. 두발과 심장의 민원이 빗발치고 그깟 야생화가 뭐라고. 이런 고통을 감뇌해가면서까지 굳이 힘들게 첩첩산중을 오르려는지 모르겠다. 그야 산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일테지만.


주말의 무료함을 달래주기위함은 두번째일 테고. 밤잠을 설친들 그리 큰 문제가 될것까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 수고로움을 모두 공제하고서도 결국 남는 장사이기 때문. 플랫폼도 드디어 나이가 들어가니 철이란게 들어버린 걸까. 장사꾼의 계산력까지 꿰뚫어보는 혜안까지 갖게 되다니. 각설하고 아무튼 올라야한다. 누구도 대신 올라줄 수 없는 건 이 세상 절대불변의 진리.


두근반, 세근반 숨을 헐떡이며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된비알 오름길. 코가 땅바닥에 닿지 않은게 그나마 다행. 그녀들은 어쩌자고 이렇게 높은곳까지 올라와 플랫폼을 시험에 들게 하는걸까. 결국 인간들의 발길을 피해 피난이라도 오지 않았을지 그져 상상만 할 뿐. 아름답게 자태를 뽐내고 피어있는 진달래 옆에 앉아 준비해온 차한잔 마시며 마음껏 여유마져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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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은 진달래차. 진달래 몇 송이 따서 가져온 온수컵 위에 동동동 띄워놓고 나만의 분위기를 한껏 연출해 본다. 이 맛 아시려나. 은은한 고향의 향. 진시황이 마셨다는 보위차가 안부럽다. 우려했던 비는 잠잠했고 하늘이 다행스레 곱다. 토요일인 어제 내내 하늘은 꾸물거리고 온종일 찌푸덩했었는데. 걱정 하나는 덜었다. 살다보니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되다니. 오르는 능선 주변 나목들이 점점 연두색으로 곱게 치장중.


정훈의 꽃길이란 노래가 산중에 울려퍼진다. 이름모를 산새들의 노랫소리와도 묘하게 일치되고. 도대체 해발고도 750미터는 언제쯤 나타나는 걸까. 정보원인 청설모도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코빽이도 보이지 않는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 오늘은 정말 이쁜 얼굴 보여줄까. 아니면, 며칠 더 기다려야하나. 심장이 터질것만 같던 찰나. 센스쟁이 나비 한마리 출현. 핸드폰을 꺼내들고 인증샷을 찍으려던 찰나 어라! 나하고 숨바꼭질하자네.


거참. 바쁜데. 잠자코 모델 한번 곱게 해주면 안될까? 결국 10여분의 실랑이끝에 겨우 두컷 건졌다. 그 이름은 애호랑나비. 그런 와중에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해발고도 750미터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정말 긴장해야 한다. 염탐꾼이 먼저 설쳐댈 수 있으니. 조심스레 안테나를 들고 동태를 살펴본 결과 다행히 나 혼자. 배낭을 풀어 벤치위에 고히 모셔두고 비밀의 화원으로 향한다. 이곳저곳에서 생명의 숨들이 울려퍼지고.


일빠로 저에게 인사해주는 미치광이풀. 발걸음이 자꾸 떨린다. 희극일까. 아니면 비극일까. 숨바꼭질이 단시간에 끝날것 같지가 않는 분위기. 이곳저곳 정신없이 쏘다닌지 20여분. 심장이 점점 떨려온다. 드디어 내 녹쓴 더듬이에 나타난 오늘의 주인공. 완전 피크타임이었다. 물고기가 첫 헤엄치기를 시작하듯 조심조심 다가선다. 내 발걸음에 혹여 밟히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낭패. 그리고 심봤다를 연신 외쳐댄다.


결국 3전 4기끝에 결국 성공. 오우, 땡잡았다. 오늘 억수로 운수좋은 날. 마치 고액 로또라도 하나 당첨된 기분이다. 어젯밤 꿈자리가 그리 좋더니만 완전 사랑스런 님을 만났다. 이런걸보고 산뽕맛이라 한다더니만. 한동안 정신없이 찍어댔다. 야생화가 뭐라고 꽃쟁이들 마음을 이리도 두근거리게 만드는지. 역시 기분이 떱더름할땐 떠남만한게 없다. 도전은 아름다운 것. 떠나길 잘했다. 방콕이라도 했으면 어쩔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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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도 새도 모르게 몇 컷 찍어주고 또 아쉬움에 돌아서서 또 찍고. 만개한 꽃망울. 수십번 찍었으면서. 아쉬워서 돌아서서 또 찍고. 지우고. 그렇게 어느새 30여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런데 하늘이 점점 어두워진다. 이럴땐 36계 줄행랑이 답이다. 부처님께서 보내셨나. 아니면 산신령님의 작품일까. 무조건 뛰었다. 백둔봉으로 오르는 내내 광릉요강꽃의 실루엣들이 내 뇌리를 때린다.


그렇게 두어시간 산중을 미친듯 더 헤맸고. 오늘 다섯시간 남짓은 그야말로 황홀함의 극치였다. 내려오면서 명지폭포앞에 섰다. 곱게 떨어지는 물줄기앞에서 조용히 외쳐댄다. 오늘 하루도 미치게 행복했었다고. 우려했던 비가 기여코 떨어진다. 하산길, 승천사에 들려 합장했다. 부처님께 모쪼록 승천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결국 물분자들과 내가 한몸이 되고서야 애마에 도착.


아지트로 향하는 길 마치 개선장군이나 된것처럼 우쭐해지는 어깨를 달래느라 점점 힘이 빠진다. 진달래피고 새가 울면은 두고 두고 그리운 사람 ~ ~ 플랫폼의 입가에 미소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PS) 25년 봄은 플랫폼에게 그야말로 백척간두 진일보.

야생화찾아 삼만리, 동분서주.

그 백척간두의 중심에서 만났던 광릉요강꽃. 진미였다. 삶의 의미를 새롭게 가르켜준 꽃.

플랫폼에게서 5월 5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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