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제목을 쓰려니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추석 다음날 출발하여 13일 만에 끝낸 여행에 대해 말이다. 혼자서 해결한 많은 일들을 생각하면 이번 여행은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라 말하고 싶지만 동행한 사촌 언니의 조력은 더없이 컸고 나와는 극단적으로 달라 많은 조절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내게 많은 것들을 맞춰준 언니가 들으면 서운할라나!)
파리는 익숙해서 어딜 가도!라고 자신했지만 찾는 버스 정류장을 찾아 에펠탑에서 강을 건너 20여분을(그놈의 30번 버스) 헤매기도 했고 오페라로 접어든 길 끝엔 마들렌 성당이 나타났으며, 개선문 위에서 언니에게 보여주려던 야경은 어둑해지기도 전에 체력을 견디지 못한 내 탓에 실종되어야만 했다.
생각해 보니 파리로 들어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비상구 쪽 넓은 자리에 웃돈을 주고 앉았지만 다른 때와 달리 영화감상도 기타 무엇도 하지 않은 채 생각을 하다 졸다를 반복했다. 되짚어보니 나 혼자 계획하고 예약한 모든 일정을 겁내고 있었던 것 같다. 혼자라면 안되면 말고! 라겠지만 유럽여행은 처음인 언니에게 앞서서 뭔가를 다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내심 컸었던 모양이다.
파리는 여전히 분주하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웠다. 우리 식구들 중엔 나처럼 파리를 좋다고 평하는 사람이 없고 여러 번 다시 가려는 내게 크게 공감하지도 않는다.
언니는 연신 감탄하며 사진에 담고 싶어 했다. 좋아하는 언니를 보며 뿌듯하고 들뜬 게 사실이었다.
그렇지? 언니. 예쁘죠? 자유가 막 느껴지죠? 란 말을 했던 것 같다.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숙소에서 가까운 (연예인 홍진경이 소개한) 피자 맛집을 찾아 피자를 즐긴 후 동네나 한 바튀 돌고 쉬다가 저녁즈음 개선문에 올라 야경만 보려 했었다. 고작 2박을 하는 파리에서 제일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짐을 풀고 피자를 맛있게 먹은 우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오페라 앞을 지나치고 마들렌 광장을 지나 꽁꼬드에 개선문까지! 걷고, 올랐다. 라데팡스를 가리키며 아름다운 야경을 기대하라고 말하는 순간 속으론 제발 해가 빨리 지기만을 기도했다. 오한이 나고 눈이 빠질 듯 두통이 밀려왔다. 24시간이 지나도록 한 잠을 자지 않은 듯했다.
나의 상태를 본 언니가 어스름해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 에펠과 사방으로 뻗은 거리를 본 것만으로 충분하다며 귀가를 서둘렀다. 숙소로 들어와 세수를 하려 거울을 보니 눈이 천리는 들어갔고 얼굴엔 살가죽만 붙어 체중이 훅 빠진 느낌이었다.
바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일정은 제법 순조로웠다. 이전에 남편과 김치찌개를 먹으러 갔었던 '온 더 밥'은 홍진경말대로 대박이 났는지 대기줄이 제법 길었다. 우리는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의 맛에 감동했다. 옆 테이블의 한식을 즐기는 사람들에 반가웠고 조악한 양의 한식표방 음식에 콧웃음을 치며 연신 맛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맞췄다.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 그리고 언니가 좋아한 오랑쥬리미술관의 수련과 뛸리히 정원에서의 휴식들도 모두 다 좋았다. 시떼섬과 퐁네프다리를 걷고 시청 앞을 걸어 69번 버스를 타고 에펠로 가 한 참을 또 걸었다.
루브르 맞은편 위치한 빨레루아얄을 보여주고 내가 가보고 싶었던 도서관 리슐리외에 들러보려 했지만 시큰둥한 언니의 표정을 읽은 나는 이번 파리의 가장 큰 목적지였던 도서관을 포기해야 했다. 온 더밥이라는 한식당에서 가까운 거리인데! 보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 길을 들어섰더라면 좋았을 것을!
다시 갈 파리의 목표가 하나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비껴 서고 말았다.
호텔의 커피맛이 좋다고 만족해하는 언니는 크로아상과 커피 한잔으로 끝냈지만 나는 두 세 접시를 비워가며 체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룻밤을 더 지내고 리옹역으로 가 스위스 바젤로 가는 기차에 오를 동안 파리에 대해 이전의 감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고 언니도 연신 만족해했다.
60대 중반을 넘긴, 나보다도 작은 언니가 배낭을 메고 나와 호흡을 척척 맞춰준 걸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다. 다른 무엇보다 부지런하고 동작이 빠른 내 속도에 맞추느라 많이 애썼다는 걸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