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asy sun Apr 25. 2023

한 솥 가득 스팸 카레

여자의 아침


엄마는 왜 여행 전 카레 한 솥을 끓였을까?


<오늘의 조식, 스팸 카레>

기름에 감자를 들들 볶다가, 양파와 스팸을 넣어 함께 볶는다.

물과 함께 카레 가루를 넣어 재료가 익을 때까지 푹 끓이면 카레는 완성.

따뜻한 밥에 한 국자 크게 얹어 비벼먹으면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또 없다.




엄마의 여행을 대표하는 음식, 카레.

엄마가 여행을 가시게 되면, 보통 준비해 두고 가시는 대표적인 음식들이 있다. 곰탕 혹은 카레. 한 솥 크게 끓여 놓은 곰탕과 카레는 엄마의 여행이 끝나고 집에 다시 오실 때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일반적. 여행에 앞서 카레 재료를 준비하는 엄마의 칼질 소리는 경쾌하고, 한 솥 크게 끓이는 엄마의 국자는 둥글게 춤을 춘다.


엄마의 기분과는 다르게 앞으로 닥쳐오는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같은 음식을 질리도록 먹어야 하는 나머지 가족들의 기분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아, 며칠 동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침은 카레겠구나. 




나의 음식은 얕은 양은 냄비에서 끓이는 라면인 줄 알았다.

12년 전, 해외에서 공부를 하던 나는 몇 년 만에 한 학기 정도의 여유를 내고 한국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해외에 살면서 엄빠찬스로 생활비의 일부를 충당해 왔기에 한국에서까지 엄빠찬스를 쓰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입국하기 전부터 열심히 알바 사이트를 뒤졌다.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건 영어뿐이었고, 관련 회사의 알바로 들어가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면접 날짜를 잡았다. "이사"와 시작한 1:1 면접은 "실장"과 "팀장"까지 추가되면서 3:1의 면접이 되었다. 후에 들은 얘기로는 내가 이 회사의 최초이자 마지막 3:1 면접이었다고 한다.


6월에서 12월. 6개월만 알바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장 인력이 급했었던 회사에서는 합격 목걸이를 내주었다. 당시 최저시급보다 조금 높은 100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알바를 시작했다. 일을 하며 조금씩 친해진 실장님, 팀장님이 일을 곧잘 한다며 "공부하는 거 미루고 일이나 같이 하자"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제안에 "저는 공부 더 하러 가야죠~" 라며 콧대 높은 소리로 대답을 했었다.


나에게 이 회사는 빠르게 끓여 후루룩 먹는 라면이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음식은 한 솥 가득한 카레가 됐다.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나는 "알바"로 시작한 이 회사에 12년 동안 몸담고 있다. 알바에서 시작한 내 직책은 원장이 되었다.


그 해 12월, 계약대로 퇴사를 통보했다. 2주 정도 휴식 후, 다시 미국으로 출국하는 일정이었다. 그 "휴식 기간" 동안 엄마가 쓰러지셨다. 어느 날 저녁, 엄마가 식은땀을 흘리시다가 기절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 알아낸 병명은 급성 신장염. 더 심각해지면 신장 투석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은 맵고 짠 것 맛있게 드실 만큼 건강을 되찾으셨으니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여기에서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집에서는 당연히도 괜찮으니 공부하러 미국으로 돌아가라 했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나도 K-장녀였다. 엄마가 식은땀을 흘리며 병원으로 옮겨진 모습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떠날 수는 없었다. 출국을 취소하고, 실장님에게 연락을 했다. 농담 반 진담 반의 그 "제안"이 아직도 유효한 건지. 감사하게도 단번에 OK를 해 주셨다.


계획에서 크게 달라진 이 미래가 내 선택이 아니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라면이라 생각했던 이 회사는 내가 선택해서 끓이기 시작한 카레 한 솥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끓인 카레 한 솥은 아직까지 바닥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Prologue. 아침 먹는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