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먹는 여자
손절 타이밍을 놓쳤을 때, 당신의 선택지 볶음밥
<오늘의 조식, 볶음밥>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몽땅 꺼낸다. 잘게 다져 밥과 함께 볶아주면 볶음밥은 완성이다.
김치 혹은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만 맞춘다면 맛은 보장된다.
당신의 냉장고를 구원할 볶음밥
생각 없이 장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보통, 배고플 때 장을 보면 벌어지는 일이다. 평소에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을 정도로 채소를 찾지 않던 내가 어디서 오는 근자감인지 채소를 마구마구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진다.
"채소는 빨리 무르니까, 손질해서 냉동실에 보관하거나 소량으로 빨리 먹어."
생애 처음으로 독립을 한 수많은 사회 초년생들은 공감할 것이다. 왠지 모르게 나는 싱싱한 재료로 매일매일 건강한 식단을 손수 차려먹을 것만 같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부모님과 살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신선코너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엄마가 깎아줘도 먹지 않던 과일을 요리조리 살피면서 장을 본다. 그리고, 어느새 집 냉장고에는 내가 언제 샀는지도 모르고, "손절 타이밍"을 놓쳐 원형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는 채소 몇 개가 굴러다닌다.
자취를 시작하던 나에게 엄마는 분명 "꿀팁"을 주었었다.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그 속담을 일찍 깨달아야 했다.
어느 정도, 자취에 짬이 차기 시작하자 나만의 해결책을 만들었다. 볶음밥.
냉장고에 있는 채소가 무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몽땅 꺼내어 사정없이 다져 프라이팬에 다 넣고 밥과 함께 볶아버린다. 김치가 있으면 김치볶음밥, 새우가 있으면 새우볶음밥, 참치캔이 있으면 참치볶음밥, 아무것도 없으면 그냥 채소볶음밥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주식, 부동산 등의 재테크가 유행을 하자 함께 밈처럼 떠도는 단어가 된 "손절." 나는 그 손절이 참 어렵더란다.
야심 차게 구매했던 채소를 제 때 사용하지 않고 쓰레기로 처리해 버릴 때, 잘 올라갔던 내 주식이 뚝 떨어졌을 때, 아무리 봐도 잘못된 주식을 내 주식이라고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못할 때, 이젠 끝난 인연도 처음엔 달랐다며 돌아서지 못할 때. "미련"스럽게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버티고 버티다 결국은 내 실수를 마주하고 끈을 놓는다.
채소도, 주식도, 사람도, 상황도 그렇다. 그동안 내가 들여왔던 노력이 생각나고, 쏟아냈던 감정이 아쉬워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끝맺지 못한 아쉬움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기다려보자.
몇 년 전,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던 중학교 친구에게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였다. 아마, 저장된 핸드폰 번호에 모두 발송이 되었을 것이다.
"경사는 챙기지 않더라도, 조사는 챙겨야 한다."
바로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 친구는 자동으로 문자가 발송된 것이라 미안하다며, 부담 갖지 말라는 말을 먼저 했다. 괜찮은지를 묻자, 한 동안 아프셨던 것이라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었다며. 몇 분간 서로 근황을 주고받았다. 장례식장에 찾아가자, 어릴 적 뵌 적이 있던 친구의 어머님은 날 알아보셨다. 잘 지냈는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었는지, 코로나 시기에 와 줘서 고맙다며 한참을 손을 잡으셨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기다려보자. 끝맺음 없이 멀어진 인연들이 "흐지부지"했기 때문에 돌아오기에 더 쉬울 수도 있을 테니. 함께 걷던 길을 가다 문득, 함께 먹던 메뉴를 보고 불현듯, 함께 본 영화가 재상영할 때 새삼. 더 깊어지고 넓어진 적절한 시기에 나와 그 인연이 만나게 될 수도 있을 테다.
냉장고에 넣어 두고 기억하지 못했던 채소로도 맛있는 볶음밥이 나오는 것처럼.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다시 만난 인연이 때가 되어 더 맛있어질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