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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너 Jun 11. 2024

[결론]

「팡세」 27장

드디어 분류된 원고 중 마지막 장에 도착했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결론」이다. 하지만 「팡세」 자체가 미완성인데 결론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번 글은 내 나름대로 「팡세」의 결론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쓰려 한다.


분명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알 수 없다. 사실 성경 속의 말들이나 사람들의 간증에는 논리가 배어 있지 않다. 말이 되지 않는 것을 옳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이 완전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앎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인간은 무한을 들여다볼 수 없으며, 무도 마찬가지로 들여다볼 수 없다. 또 인간의 모든 행동이 이성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이성을 통해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감정에 휘둘려 잘못된 선택을 저지르고 만다.


파스칼은 인간의 이런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파스칼은 인간 자신을 위해 믿음에 의탁할 것을 권유한다. 이성의 한계 너머를 들여다보기 위해 이성을 공회전시키지 말고, 이성 너머의 영역은 믿음에 맡기자는 것이다. 우리의 도덕, 양심 같은 것들은 이성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들에 이성을 들이대며 자의적인 해석을 하다가는 세상에 정설은 남지 않게 됐다. 우리는 이성 너머에서 우리에게 행동 강령을 내려줄 절대적인 힘을 믿어야 한다. 이 힘은 인간이 이성 밖으로 넘어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게 막아줄 것이며, 인간이 의심 없이 따라야 할 행동들을 실천하면 세상은 신의 질서 아래에 놓여 아름다워질 것이다.


물론 신을 믿는 결정 역시 이성적으로는 부당하다. 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스칼은 이렇게 주장한다. 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 몇 사람을 비호해 주면 그 몇 사람이 오만에 빠질 것이라고. 우리가 삶 가운데서 우리의 미약함을 직접 체험하고, 신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같은 중간의 존재들을 통해 숨은 신의 존재를 스스로 깨달을 때에야 진정한 믿음에 이를 수 있다.


파스칼은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진정한 회심은 매 순간 정당하게 우리를 저버릴 수 있고, 우리가 그토록 분노케 하는 이 보편적인 존재 앞에서 자신을 소멸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존재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이 존재에게서 버림받을 자격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 회심은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대립이 있으며, 중개자 없이는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데 있다."


이상이 「팡세」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요약이요 결론이다. 이 결론이 마뜩잖게 보일 수 있다. 결국 파스칼은 믿음을 논리가 아닌 철학으로서 비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스칼은 믿음이 인간을 위한 도구라고 믿었다. 인간은 스스로 심연에 빠지지만, 자아를 조금 버리고 세상을 향해 눈길을 돌리면 위대한 일도 해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팡세」는 신에 대한 찬가이자 인간을 위한 찬가이다. 「팡세」를 통해 인간의 위대함은 발견할 수 없지만, 인간이 위대함에 가까워질 가능성을 발견할 수는 있었으니 나는 만족할 수 있다.


이것으로 분류된 원고에 대한 감상은 끝났고, 다음부터는 미분류된 원고를 감상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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