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파스칼이 열심히 나름의 철학을 설파하더라도 우리에게 와닿는 내용이 없다면 신을 굳이 믿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파스칼은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는데, 신앙을 '내기'로 비유하는 논변이다.
사실 신앙은 어찌 보면 선택의 문제이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신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내기는 상당히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세상의 모든 내기가 이런 식이다. 결과를 모르는데도 우리 나름대로 예측을 하고 선택을 하는 것이 곧 내기가 아니던가? "모든 도박하는 사람은 불확실하게 따기 위해서 확실하게 내기를 한다."
그런데 신앙이라는 내기는 다른 내기와 다른 독특한 면이 있다. "만약 당신이 딴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딴다. 또 만약 당신이 잃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즉 믿으면 이익을 보지만, 믿지 않는다고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 말을 '신앙이 없다고 손해 보는 일은 없으므로 신앙을 가지지 않아도 좋다.'라는 취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파스칼의 요지는 '신앙을 갖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이쪽을 선택하면서 어떤 나쁜 일이 당신에게 일어난다는 건가? 당신은 충직하고 성실하며, 겸손하고 감사할 줄 알며, 친절하고 진실한 친구이며, 참된 사람이 될 것이다. 진실로 당신은 타락한 쾌락이나 명예 그리고 향락 속에 빠져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당신이 이승에서 이득을 얻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신앙이 없다고 해서 손해를 보지는 않겠지만, 신앙을 품으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분명 크다. 그러니 아무런 손실이 없더라도 신앙을 품는 쪽이 현명하다는 것이 파스칼의 주장이다.
나는 이 논변이 재밌다. 신앙을 인생의 보험처럼 다루는 발상이 독특하지 않은가? 사실 나도 어렸을 적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모르는 상황에서 예수를 믿으면, 천국이 있다면 천국에 갈 것이며 천국이 없다면 아무 곳도 안 가겠지만 그렇다고 손해는 없을 것이다. 반면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모를 때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이 없을 때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겠지만 지옥이 있다면 나는 지옥으로 갈 위험에 처할 것이다. 깊이 따져보면 예수를 믿는 것이 사후세계를 위한 확실한 보험이 아닌가. 이런 공상이 파스칼이 먼 옛날에 했던 생각이랑 통해서 더욱 재밌었다.
물론 이 논변은 쉽게 반박할 수 있다. 우선 신앙이 가져다주는 이익, 즉 바른 마음은 신앙 없이 철학으로도 기를 수 있다. 즉 신앙을 거치지 않고도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 둘째로 신앙을 가지면 헌금 등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 대가는 분명 현세에서 손해이다. 만약에 많은 돈을 교회에 바쳤는데 정작 교회에서 말하는 사후세계가 없다면, 나는 완벽히 손해를 본 셈이 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파스칼의 논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다만 그 참신함 때문에 파스칼의 논변이 가끔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