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문화사 판본의 「팡세」는 마지막 장에 본편에 기록되지 않은 단편들을 실어놓았다. 본편에 실려있지 않은 만큼 일관적인 주제는 없지만, 대신 파스칼의 신앙이 잘 담겨 있다. 파스칼은 자신의 믿음을 어떤 형태로든 남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침묵은 가장 견디기 힘든 박해이다."
파스칼은 모든 존재 위에 군림하는 신을 믿는다. 인간의 어리석은 판단력으로 세상을 자의적으로 망치는 것보다, 모든 존재에 깃들어 질서를 이끌 하느님에게 기대기를 원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단지 믿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믿음은 실천이 된다. 예수가 생전에 그렇게 강조하던 사랑이 사람들 사이에 전염되고, 이렇게 사람들이 천국을 향한다. 애초에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가르침을 내리기 위해 예수는 사람의 옷을 입고 내려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으로 작은 일들을 큰 일처럼 하라.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일들을 우리 안에서 행하시고, 우리의 삶을 사신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큰 일들을 작고 쉬운 일처럼 하라."
안타깝게도 종교계는 늘 타락을 부산물처럼 내뿜어왔다. 믿음을 돈을 갈취할 수단으로 사용했고, 권위를 지키기 위해 폭정의 근거를 기꺼이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물론 교회의 본분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유도한 파편적인 진리들을 제칠 수 있는 가장 큰 진리를 찾는 것이 교회의 본분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미약함을 인정하고 더 위대한 진리에 귀의하는 것이 개인의 본분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규칙으로 삼아 왔다. 이제는 하느님의 의지를 그 규칙으로 삼기로 하자. 하느님이 원하는 것은 우리에게 좋고 옳으며, 하느님이 원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나쁘고 옳지 않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면 예수의 가르침을 따를 의무도 없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를 믿고 저지른 오만한 행동,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는 참상들을 생각해 보라. 아직도 세계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으며, 파스칼이 칭찬하던 유대인들마저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인간은 자신들이 자연을 지배할 힘을 얻었기 때문에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남용했지만, 지금 인류는 새로운 숙제로 지구온난화 같은 문제를 떠안고 있다. 인간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현명한 잠재성을 가진 존재이자, 그런 잠재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한 치 앞도 못 내다보고 파멸하는 존재다.
절대자에 귀의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자신이 절대자가 아니라면, 나아가 인류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초월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라면, 종교도 그렇게 나쁜 처방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팡세」의 가장 큰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