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은 살면서 기적을 몇 차례 겪은 바가 있다. 특히 불치병에 걸린 조카가 성형(聖荊), 즉 성스러운 가시관에 찔리더니 치유된 것을 보고 신에 대한 믿음이 특히 강해진 것으로 전해져 온다. 오늘날 이 기적을 과학으로 해석할 도리는 없다. 다만 자연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모종의 비약을 목도했다면 그것을 기적이라 믿고 신앙에 심취할 만도 하다.
오늘날도 기적이라는 말은 제법 흔하게 사용된다. 과학이 발전했다지만, 아직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많거니와 관측자가 모든 과정을 일일이 관찰할 수 없는 한 비약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에 결부된 기적은 특히 골칫거리인데, 기독교뿐만 아니라 사이비 종교들도 기적이 있노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스칼의 시대에도 이야기는 별반 다르지 않아서 파스칼은 하느님을 기적의 유일한 집행자라고 규정함으로써 사이비 기적들을 구분하려 했다. 하지만 기적을 행하는 이는 하느님이 유일할지라도 누구나 기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적은 각자의 신앙에 의해 해석되기 마련이다. 즉 기적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한 기적은 하느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적은 분명 효과가 강력하다. "Nisi videritis signa non creditis. (너희는 기적을 보지 않고는 믿지 않는다.)" 기적 하나만 겪으면 사람의 마음을 금방 돌릴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기적은 커다란 선전술이다. 다만 기적의 해석이 열려있는 한, 기적을 통한 선전에는 결함이 있다. 신을 믿지 않아도 기적을 믿기는 쉽다.
결국 사건의 가치는 전적으로 개인의 믿음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놀라운 기적이라도 결국은 개인의 믿음의 재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