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은 목적 없이 산책한다지요
2014년 첫 유럽여행을 떠날 때 친구가 바리바리 무언가를 챙겨줬다. 그 때의 제스쳐는 마치 친정 엄마가 애 곪을까봐 걱정하는 마음으로 쌈짓돈 주머니에 구겨 넣어 주는 모양이었다. 꾸러미에는 쿨링 파스가 여럿 들어 있었는데 이유인 즉 내가 징하게 많이 걸어다니는 사람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술에 취해 7시간을 광화문에서 경기도 인근 집까지 걸어간 적이 있을 정도로 기왕 걷는다면 아쉽지 않을 만큼 대차게 걷는 편이다.
여행지에서는 특히나 차비를 절약할 겸 지리를 익히고 싶어서라도 하루 15키로 이상은 거뜬히 걷는다. 우연히 발 딛게 된 골목이 어느 날에 다른 골목과 맞닿아 이어지게 되는 날이라도 오면 내면에 캔디 크러쉬가 팡팡 터진다. 마치 평생의 숙원을 풀은 양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걷는다는 감각은 내게 소화인데 실제 먹은 음식 뿐만 아니라 잡념을 덜어내기에 가장 탁월한 운동이기도 하다. 사실 그래서 누구에게 말하기도 벅찬 고민들에 사로잡히면 대뜸 걷고 본다. 그리고 성미가 풀릴 때까지, 몸이 너덜너덜 노곤해질 때까지 발걸음을 밀어 부친다. 익숙한 길을 걷다가 에잇하는 마음으로 별안간 가본 적 없는 골목으로 방향을 틀 때의 짜릿함이란 혼자여서 누릴 수 있는 자유 중 하나다.
지독한 베를린의 겨울 동안은 이 취미를 온전히 누릴 수가 없었는데 5월 쯤부터 쨍한 볕이 돌기 시작했다. 볕은 즉 ‘생기’다. 겨우 내내 움츠려 있던 마음을 세탁하고 탈수하겠단 마음으로 주말이면 친구의 부름에 맞추어 나가 정처 없이 함께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그것도 마음 맞는 친구여서, 베를린이 걷기 좋은 녹색의 도시여서 그렇지. 어디 여행 가서도 나만큼 걷는 걸 애지간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어울리기가 힘들다.
그런데 듣자하니 독일인의 특징 중 하나가 목적 없는 산책이란다. 함께 주로 산책을 다니는 친구는 독일인은 아니지만 함께 만나는 날이면 15키로는 거뜬하며 어떤 날은 25키로를 채운 적도 있다. 어디 산에 가거나 도심 외곽을 나간 것이 아닌 순전히 베를린 안에서만 움직인 걸음수다.
핸드폰 속의 걸음수나 사진, 문자, 메모 등의 기록에 의존해 지난 날들의 흔적들을 유추한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며 4월 중순부터 오늘까지 두 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을 걸어 다녔다. 집에 하루쯤은 가만히 누워 충전하는 시간을 누릴 법도 한데 이게 다 여름에 대한 조급함 때문이다. 원체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어서도 그렇지만 지독했던 잿빛 겨울을 지나고나니 이제 헤엄을 배우기 시작한 아기오리마냥 부단히 발을 동동 굴린다.
이번주는 4일 출근에 3일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집에 돌아와 욱신거리는 다리에 쿨링파스를 붙였다. 마지막 남은 파스를 붙이니 친구가 꾸러미를 건네주던 여름 날 종로3가 유진식당 앞에서의 부산함의 공기가 떠오른다. 나이도 먹었는데 또 그렇게 징하게 다리 아플 때까지 걸어다니고 일했냐고 핀잔 줄 친구의 목소리가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