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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연 Aug 01. 2023

베를린 퀴어퍼레이드가 더럽다고요?

동성애가 투쟁이 아닌, 퀴어 친화적인 국가 독일에서의 첫 행진

지난주 베를린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한국인 지인에게 퀴어퍼레이드에 갈 참이라고 말하니 대번에 돌아온 한마디는 "거기 더럽다면서요?"였다. 순간적으로 긍정적, 섹슈얼한 의미로서 그 말을 받아들인 본인은 눈을 반짝이며 '어떻게 더러운데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사람들이 퍼레이드 현장에서 섹스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했다. 그 말은 그가 베를린 거주 6년차임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 참여해본 적이 없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문득 '아, 이 사람 설마 한국 교회에 다녀서 이런 말을 하는건가? '란 생각이 스쳤다. 그렇지만 여긴 베를린인데?


퀴어 친화적인 도시에 살면서 한국인이자 기독인인 그가 여전히 퀴어와 섹스를 '불결하다'라는 인상으로 표현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와 이 주제로 더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지만 베를린에는 곳곳에 다양한 젠더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온몸으로 그것을 표현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리고 어째서 많은 이들이 '섹스'를 하고, '섹스'를 통해 태어나면서 그것을 사랑의 한 형태로 축복하고자 하는 자리에 오면 더럽거나 두려운 것이 되는 걸까.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의 퀴어퍼레이드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면 국내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동성애를 죄악이라 여기고 애널섹스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두려움을 갖고 있다. 마치 기우제를 지내는듯 천둥과 같은 북과 장구 소리 사이로 현란한 춤사위들을 보여주는데, 퍼레이드를 준비하고 찾아오는 이들만큼이나 일 년 중 이 날을 꽤 손꼽아 기다리는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퍼레이드 당일, 오후까지 일을 해야 했기에 이후에도 행사가 아직 진행되고 있을 만한 장소를 물색한 후 친구 무리와 만나기로 했다. 이들은 두 사람 모두 바이섹슈얼로 과거 동성과 교제한 경험들이 있으며 현재는 여성과 남성 파트너로서 결혼해 이곳에 살고 있다. 나의 친구인 여성이 독일로 이사오기 전 교제했던 여자친구에 대해 이야기 해 자연스레 알게 된 경우다.


다양한 연애와 가족 형태를 지양하며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결국에는 모든게 사람과 사람의 사랑임을 안다. 동성애가 '불법'인 국가에서 사람 좋아하는 마음이 '투쟁'이 되고야마는 삶을 지켜보았던 아시아인으로서 허탈해지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조건 없이 사랑 받고, 하고자 하는 존재와 마음은 무해하며 지켜져야만 한다.


퀴어 친화적인 사람들과의 만남 빈도수가 높아지는 것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가시화에 대해 들은 이야기와도 맞닿는다. 한국인들이 외국에 나가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외국에는 왜 이렇게 장애인이 많느냐'라는 것이다. 지난 2년에 걸쳐 거주했던 런던과 베를린만 해도 버스를 타면 늘 휠체어나 유아차에 탑승한 이들과 동승하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이동'하고 싶다며 대중교통이나 길가를 점거하는 '투쟁'을 벌여야지만 '저 사람들 다 어디 있었어'란 말이 나온다.


베를린 거주 1년차, 퀴어퍼레이드에 처음 가서야 그 말이 절로 나왔다. 정말 제멋대로 갖춰 입은, 저세상 패션의 온갖 인간 군상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제야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아, 이래서 베를린에 다들 사려고 하는 거구나.'

어쩜 저렇게 구성해서 입을 생각을 다했을까 싶을 정도로 퀴어라는 삶을 칠하고 확장해나가는 이들의 모습은 정말 천차만별 상상 이상의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젖가슴 일러스트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초록 머리를 한 나의 모습은 오히려 다소곳해 보일 정도였다.


친구들과 함께 참여한 퀴어퍼레이드는 기존 대형 퀴어퍼레이드인 CSD(Christopher Street Day)(기사 참조 : https://omn.kr/1k8eo)가 지나치게 상업화되며 '백인주의'에 머문다는 비판에 대안으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퍼레이드였다. 인터내셔널리스트 퀴어 프라이드 (Internationalist Queer Pride)라는 이름을 걸고 행사를 주최한 이들은 행진 내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모두에게 평화 없이는 진정한 평화란 없다란 구호를 외쳤다.

이외에도 러시아어 구사자인 무정부주의자, 레즈비언 가시화를 위한 자전거 행진 등이 있다. (기사 참조 : https://www.morgenpost.de/berlin/article238984457/csd-alternative-dyke-march-international-queer-parade-pride-veranstaltung.html)


이 도시는 내가 나일 수 있고 누구도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받아들여진다는 안전함을 추구하고 지키고자 한다. 그렇기에 유명 베를린의 클럽 베억하인에서 '노인들이 봉춤을 추고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헐거벗은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광경이 펼쳐진다'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행진 중 "나는 러시아에서 존재하지 않아(I don't exist in Russia)"란 팻말을 든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러시아는 얼마 전 성전환을 법으로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알리는 행동을 금지하며 벌금을 매기기 시작했다. 틱톡 어플 회사가 퀴어를 조장한다며 벌금 4천만원을 부과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독일 전역에서는 6월 한 달을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라고 명명하며 교통공사부터 시자체와 기업들이 사방에 무지개를 수놓았다. 당신이 어떤 성과 사랑을 지향하건 환영한다는 의미이며 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엄중하게 반대한다는 연대다.

국가와 사회, 커뮤니티가 할 수 있는 복지의 최대 역량이자 목적은 다 같이 행복해지기 위함이다. 더 이상 존재 자체를 이해 받고자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것이야말로 개인과 사회의 '프라이드(Pride)'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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