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2번째 이사
1년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달은 시간이다. 독일의 지독한 첫 겨울과 눈부신 볕이 쏟아지던 여름날들을 그 집에서 보냈다. 좀처럼 맞지 않는 룸메이트와의 불화로 지옥 같은 날들도 있었지만 어쨌건 하루를 마치고 몸을 뉘이러 돌아갈 곳은 그 집이었다. 불안이 요동치는 날들 속에서도 어김없이 매일 자기 전 샤워를 하고, 아침이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화분이 슬퍼지지 않게 물을 주고, 나 또한 너무 침잠하지 않도록 부지런히 해야 할 일들을 차곡차곡 실행해나갔다.
주거 공간은 내게 그 사람의 생활과 습관이 묻어나고 그로 인해 구축되는 하나의 세계다. 최적의 동선과 효율성을 고려하며 물건들의 자리가 배정되고 그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 그리고 생체 리듬감이 형성된다.
침대 머리맡에는 안경을 놓아 둘 공간이 필요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공복에 먹을 유산균 캡슐과 물 한 병이 위치한다. 간장과 참기름은 두부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데에 늘 같이 쓰임으로 둘을 떨어뜨려 두면 서운하다. 속옷과 양말류는 하루를 마무리하거나 시작하는 마라톤에서의 바톤과도 같은 역할이면서 기분에 따라 고를 수 있어야하므로 가지런히 잘 보이는 곳에 보관되어야한다.
내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가구 하나 제대로 없는 이민자, 임시 체류자의 삶이지만 지내는 동안 만은 생활을 이루는 부품들이 잘 대우받게끔 나만의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이사는 약 일주일에 거쳐 새가 둥지로 지푸라기를 모아오듯 대중교통을 통해 이루어졌다. 30인치와 20인치 캐리어를 3층에서 가지고 내려오는 날은 근육통을 일으켜 며칠을 부들부들 떨게 했다. 이사일 전날에는 좀처럼 도움을 청할 줄 모르는 나의 성격을 관통한 듯한 친구가 도와주러 오겠다고 고마운 통보를 하는 바람에 난생 처음 우버 택시를 이용했다.
30인치와 20인치 캐리어에 가방 2개, 박스 4-5개와 화분 등. 어찌 이토록 나는 이 모든걸 지고 살아가야하는 사람인건지를 질문하게 만들었다. 1년에 한 번 꺼내볼까 말까한 물건들도 있는데 신체의 장기 일부가 된 것마냥 늘 데리고 다니게 되는, 자잘한 것들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 어쩌면 없어졌어도 모를 것들도 더러 있다. 그것들은 아마 집착, 집념, 추억 등이라고 불러야 할 지도 모른다.
이사 갈 때마다 내 방 문에 부적처럼 붙이는 것은 여성환경연대의 캠페인 문구가 적힌 그래픽 포스터다.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로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 지향들의 지표가 된다. 가능한 가지고 있는 것들 안에서 누리고자 하는데 늘 ‘임시상태’인 외국인 체류자로서 억누르게 되는 마음들이 있다.
‘장기 거주 할 집으로 이사만 가면’이란 전제를 두고 하나쯤은 사고 싶은 것은 전자가전도 아니고 다름 아닌 화분이다. 영국에서 독일로 대륙을 넘을 때 가장 마음이 쓰였던 것은 1년 가까이 키웠던 작은 화분 하나였다.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안되는 대상 즉 ‘책임’이었기 때문에 화분은 어느샌가 내게 ‘거주’이자 ‘돌봄’에 대한 개념으로 다가왔다. 이민과 이주를 분갈이의 개념으로 해석하고 그것에 이입하는 마음이 컸기에 더욱 그렇다.
새 집에 10개월간 임시로 함께 거주하게 될 친구는 베를린에 거주한 1년 6개월의 시간동안 3개월마다 이사를 다녔다. 함께 구한 지금 이 집은 그의 5번? 6번째 집이다. 많이 지쳤을 친구에게 그리고 지친 내게 종종 따뜻한 집밥을 먹여주고 술도 마시고 무려 발코니에서 담배도 피며 ‘음, 살만한데?’라는 말을 나누고 싶다. 물론 내년 봄부터 다음 집을 또 찾아야하지만 적어도 이번 겨울만큼은 덜 두려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사라는 무게. 베를린은 한국 같은 이사 서비스라는게 없는 도시이기에 심심치않게 대중교통에서 온갖 자잘한 가구와 짐들을 옮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물리적 무게도 어마어마하지만 무엇보다도 잠자고 먹고 생활의 근간이 되는 공간을 통째로 바꾸는건 마음을 붙들고 휘두른다. 어느 밖을 돌아다니건 늘 ‘돌아가야 할 곳’이 있기를 바라고 그 곳에서 안전하기를 바라는데 외국인, 프리랜서 등의 신분은 ‘체류’라는 단어를 거듭 살펴보게 만든다.
새로 이사온 집은 16년간 꼬마아이 둘과 성인 둘이 가족을 이루어 지내던 공간이다. 내년 여름까지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체류 할 예정이다. 곳곳에 아이들의 낙서와 종이접기, 장난감의 흔적들이 남아 있기에 이 공간에 나를 어떻게 녹여낼 것인지를 여전히 고민한다. 가장 용이한 방법은 곳곳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나 온갖 전단지, 엽서들로 도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익숙하게 쌓여갈 습관들이 이 곳이 이제는 나의 주거 공간임을 말해줄테지. 예를 들면 술에 만취해 집에 들어왔어도 벗은 속옷과 양말을 세탁 바구니에 넣을 정신머리(무의식)는 있는 날의 나를 발견한다던가하는 것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