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들'의 퀸카, 그리고 알러지
고백한다. 나는 뚱뚱하다.
평균 여자들보다 키가 크다는 걸로 몸무게의 증량을 퉁치기엔 그 수위를 넘어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100kg에 근접했고, 그 이후로는 체중계 위에 올라가본 적이 없다. 100kg가 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나는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잃을 것 같다. 아니, 지금도 충분히 잃었다. 지금도 여성으로서의 삶을 '실격'했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있다.
언제 이만큼 살이 쪘을까.
내가 그렇다고 마냥 게으른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싶진 않다. 곱씹건데, 나는 몸무게가 60kg를 상회했을 때부터 내가 '뚱뚱하다'고 느꼈다. 허벅지가 두껍고 뱃살이 나와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주 내 허벅지를 세로 방향으로 갈라 반으로 자르는 상상을 했다. 내 뱃살을 툭 떼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몸무게는 자꾸 불었다. 몇 백만원을 들여서 몇 차례고 PT를 받았고 식단 조절을 했고 헬스장에 다녔다. 수영도 미친듯이 다니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살이 빠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현상유지였다.
운동으로 되지 않는 것 같아서 미친듯이 정보를 찾았다. 식이조절이 다이어트 성공 사유의 80프로 이상이라기에 음식을 줄인다고 다이어트 도시락만 주구장장 몇 달간 시켜먹은 적도 있었다. 다이어트 차만 마시고 몇 주일을 보낸 적도 있었고,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삭센다 주사부터 식욕 억제제까지 먹었던 약도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몸무게는 자꾸 불기만 했다. 나는 내 몸이 지금도 저주스럽다. 최근에는 내 몸에 대한 혐오감을 이기지 못하고 카드를 들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내가 선택하려고 했던 최후의 방법은 지방흡입이었다.
물론 가족의 만류로 수술대 위에 눕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슬프게도 이번 아이들의 신곡 '퀸카'와 '알러지'는 나의 외모적 자괴감을 관통한다. 특히 이에 대한 정확한 주제 의식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찾아볼 수 있는데, 상편에 해당하는 '알러지' 뮤직비디오부터 하편에 해당하는 '퀸카' 뮤직비디오를 훑어보면 금세 눈치챌 수 있다. '평범하고 못생긴 여자'로 대표되는 캐릭터 '소연'은 자기보다 예쁘고 아름다운 소녀들을 경외하고 질투하고 절망한다.
Why ain't I pretty? why ain't I lovely?
(왜 난 예쁘지 않아? 왜 난 사랑스럽지 않아?)
Why ain't I sexy? why am I me?
(왜 난 섹시하지 않아? 왜 나는 나야?)
Love me, love me, love me, love me, love me, want
(나를 사랑해 줘, 나를.)
Love me, love me, love me, love me, love me, want
(나를 사랑해 줘, 나를.)
She's so pretty, yeah, so lovely
(그녀는 예뻐, 맞아, 사랑스러워.)
Shе got everything, why am I, not her?
(그녀는 모든 걸 가졌지. 왜 나는 그녀가 아니지?)
Lovе me, love me, love me, love me, love me but
(나를 사랑해 줘, 나를.)
빌어먹을 huh, 내 거울 알러지
하편 '퀸카' 뮤직비디오에서는 끔찍한 자기혐오감에 시달리고 있던 소연은 결국 성형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고 '그 소녀'들처럼 '퀸카'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 소연은 그저 마취에 취한 소연의 상상일 뿐이었고, 결국 원래의 자신을 긍정하며 병원에서 수술을 포기한 채로 나온다.
아이들이 하려는 말은 아주 뚜렷하다. '외모 컴플렉스를 강요하는 사회와 상관 없이, 너는 아름답다'.
내가 제법 재미있게 본 영화가 하나 있다. 영화 '아이필프리티'는 자신의 몸을 나처럼 극도로 혐오하던 주인공이 머리를 한 대 얻어맞곤(!) 자기가 정말 끝내주는 몸매가 되었다는 시각적 환각을 느끼면서 생기는 코미디 영화다. 영화 자체는 꽤나 상큼하고 발랄하지만, 어쩐지 나는 재미를 느끼면서도 웃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름다움'의 표준이 되었다고 믿곤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행동들을 하는데, 어쩐지 그 모습 자체가 너무도 서글펐다. 공감성 수치가 들었다고 해야할까. 나와 비슷한 체형을 가진 여성이 자신의 몸에 자신감을 가지는 모습 자체가 무척이나 괴리감 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계속 곱씹게 됐다. 대체 여성을 압박하는 외모 컴플렉스는 무엇인가.
여성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미디어에서 몇 번이고 회자되는 소잿거리기도 하다. 단순히 비만에 대한 문제라고 해도, 제대로 치료받거나 도움을 받을 곳은 없다. 그저 운동을 열심히 하라던지, 음식을 줄이라던지. 돈을 써서라도 쌍커풀 수술을 하라던지, 하다 못해 유튜브나 링피트를 하며 칼로리를 소모하라던지. 나의 의지와 노력의 문제로 모두 귀결된다. 심지어 정신과에서 내가 수면을 깊게 취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꾸 살을 빼라고 한다. 나의 정신 건강까지 모두 비만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못생김과 비만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뭔데 운동도 안 하고
메이크업 하나도 못하고
그래 난 내가 봐도 별로인걸
알러지 Allergy 가사 中
하지만 나는 본격적인 운동을 잘 하지 않을 뿐이지, 하루 5000보 이상 걷는 날이 많다. 굳이 달콤한 간식 같은 건 먹지도 않는다. 사탕이나 초콜릿, 과자류를 먹는 날은 극히 드물고, 기껏해야 내가 삼키는 과당이라고 해봐야 한 번씩 먹는 음료수 정도다. 기회가 된다면 건강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걸어다니려고 한다. 차도 없다. 하지만 내 몸은 여전하다.
나는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장애 환자고, 그래서 이 약을 함부로 끊을 수 없다. 이 약을 먹으면 몸무게가 줄지 않는다. 오히려 늘어나기까지 한다. 생리통이 극심해서 미레나(체내피임약)를 2년여간 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도 몸무게가 늘었다. 몸에는 '항상성'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기존의 몸을 유지하려는 강력한 기제가 호르몬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소리다. 내가 뚱뚱한 몸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는 별개로, 몸은 이 몸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는 맛있는 걸 먹어서라도 행복감을 느껴 내 정신 건강을 지키려는 방어 기제를 가지고 있다. 식이 조절을 시작하는 순간 나는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지고 삶이 버거워진다. 그렇다. 나는 어쩌면 살을 뺄 수 없는, 내 외모를 개선할 수 없는 인간이다.
게다가 나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근본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외모 컴플렉스는 코르셋에 가까울 뿐이라는 사실을. 여성은 아름답고 예쁘고 말라야 한다, 라는 시각은 순전히 사회가 주입해놓은 강박이다. 페미니스트인 내가 그 사실을 모를리가 없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거대한 기제라는 사실을 안다. 너무도 잘 알지만, 나는 몇 번이고 무너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몸을 쥐어뜯는다.
나도 내 몸이 싫다. 이 빌어먹을 거울 알러지.
아이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노래를 즐겨들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충분히 그 노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 나는 내 몸을 사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