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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 Apr 27. 2023

10. 퀴어는 왜 고양이를 사랑할까?

나의 고양이 '루나'에 대한 사소한 잡담


2월 15일.


  나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일경험드림+사업(참고)의 현장 면접 가던 길이었고, 그 말인즉슨 활짝과 공식적인 대면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물론 다른 사업체들도 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하루 종일 열려있는 면접장에 최소한 너무 늦지 않게 도착했어야 했다. 오전 중에 나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었다. 집을 나서 골목을 걷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났다.


 고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아봤다. 그런데 어째 좀 이상했다. 노오란 치즈 고양이였는데, 녀석의 상태가 한눈에 봐도 좋지 않았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 사이에서 애웅, 애웅, 울고 있는 녀석이 보였다. 다가가도 도망치지도 못했다. 직감이 들었다.


 이 고양이, 그냥 놔두면 죽겠다.


 깊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무작정 고양이를 안아들었다. 엄청 더러웠고 꼬질하고 냄새가 났지만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내가 무슨 아픈 고양이라면 다 주워오는 사람도 아니다. 고양이를 정말정말정말X100로 좋아하지만, 그만큼 생명의 무게가 무거워 되도록 키우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함께 사는 친동생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어도 나는 반대하는 축에 가까웠다. 우리의 재정사정으로는 생떼같은 목숨 하나 거둬 키우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나는 분명히 그랬다. 고양이를 사랑했지만 키울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뭐에 홀린 건지 나는 그 고양이를 안고 근처 동물 병원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이동장도 없이 거리가 있는 동물병원으로 달려가는 길이 어찌나 멀던지. 행여 고양이가 내 품에서 빠져나가 차도로 뛰어들까봐 전전긍긍하며 몸을 웅크렸다. 다행히 녀석은 내 팔만 겨우 붙들고 얌전히 있었다. 살리려 데려간다는 것을 알았을까. 병원을 도착하고나고서야 손이며 옷이며 온통 엉망이 된 걸 알아차렸다. 그래도 당장 고양이의 상태를 보고 건강을 챙겨줘야겠다 싶었다. 물론 그때까지도 키울 생각은 없었다. 되도록 임시보호를 하거나 방사를 하는 방향으로 생각했다. (그런 것치곤 초기 검사 비용 40만원은 굉장히 지갑에 타격이 컸다.)


 하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더, 상태는 심각했다.


 심각한 저혈당. 그래서 그냥 뒀다면 몇 시간 내 쇼크사 할 수준이었다. 이미 몇 번이고 오간 구내염 때문에 잇몸은 뿌리를 다 드러낼 정도로 상해있었다. 때문에 염증 수치도 무척 높았다. 덕분에 극심한 영양실조와 빈혈에 시달리고 있었고, 고양이의 평균 체중 3kg에 극도로 미달하는 1.8kg의 몸무게였다. 게다가 당시는 2월, 매서운 늦겨울 바람이 불 시기였다. 몸도 가누기 힘들어하던 녀석은 체온이 재어지지 않을 정도로 저체온이었다. 상태를 본 수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아무리 치료를 한다고 해도 방사가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순간 얼이 빠졌다. 생명을 키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들었다. 기타 심각한 질병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검사를 거쳤고, 범백이나 복막염 소견은 다행히도 나오지 않았다. (고양이에게 두 질병은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그래도 상태가 좋지 않은만큼 급하게 혈당을 올리는 수액을 맞고 씹지 않아도 되는 먹이를 주어야 했다. 하루 가량 입원을 시켜놓곤 면접을 보러 갔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 고민이 깊었다. 결국 나도 고양이를 키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말해 녀석은 우리 집에서 잘 자라고 있는 중이다. 어느새 몸무게도 3kg 내외이고, 심각한 잇몸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어금니 중심의 전발치 수술 (무려 수술비가 100만원 이상 들었다!)을 진행했고, 중성화수술을 오늘(4월 27일) 했다. 접종 3차, 심장사상충 매달 1회, 그 밖에 각종 증상으로 인한 안약, 항구토제, 피부염 연고 등등등. 치료비에만 거진 400백만원 가까이를 소요했다. 덕분에 피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괜찮아진다.


 나의 작은 고양이 '루나'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고 있다.





 우울감을 달고 사는, 만성 우울증 환자인 내게 루나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끝도 없이 아픈 고양이를 붙들어 안고 우는 유대감, 일방적으로 공격성을 표출하는 고양이를 달래며 처치하는 유연함, 잔뜩 지쳐 퇴근한 밤 내 방에 구토를 해놓은 것부터 치우는 인내심. 하지만 가장 큰 가르침은 '생존에 대한 의지'다. 


 녀석은 끊임없이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며 자리를 피하는 (이건 키우는 집사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루나가 사람을 불러서라도 살아보려고 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 게다가 입원한 와중, 수의사 선생님이 '아이가 낯선 환경에 음식을 거부할 수도 있다'라고 했지만, 루나는 씩씩하게 먹이를 삼켰다. 그 뒤로도 많은 고비가 있었다. 서툰 집사들은 아픈 고양이가 내일 죽을까봐 오늘밤 울었다. 정작 고양이는 하루하루 건강을 되찾아갔다. 스트릿에서 3년을 살아온 고양이건만, 겨우 3달째인데도 인간과 함께 사는 것에 애써 적응하고 있는 루나의 영리함에 때로 감탄하게 된다.


 나는 나름대로 내가 랜선집사로서 고양이의 습성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막상 고양이와 삶을 함께 하고 나니, 나는 정말 고양이에 대해서 얕게 알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과 털이 많이 빠진다는 점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치료비 외에도 각종 물품 구입비로 말도 안 되는 돈들이 깨졌고 정말로 털은 빗질을 해줘도 바닥을 굴러다닌다.) 하지만 고양이가 이토록 구토를 많이하고(!) 사람을 질색하며 싫어한다는 건(!)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새로운 물건이 오면 아주 신중하게 검토 후 이용한다. 유튜브에서 고양이들이 캣닢과 마따따비를 안고 구르는 것도, 장소와 주인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건 사냥놀이도 마찬가지였다. 고양이라면 모두 사냥놀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루나는 아무리 현란하게 장난감을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는다.





 그리고 루나와 함께 하면서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다. 생각해보면, 내 주변 퀴어들은 대부분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고, 그 중 대부분이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물론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런 명제가 떠오른다. 모든 고양이 애호가는 퀴어라는 전제가 성립되진 않지만, 모든 퀴어는 고양이 애호가일지도 모른다. 


 물론 웃자고 하는 말이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퀴어가 있다면 당연히 존중하고 싶다. 물론 세상에서 고양이를 어떻게 싫어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귀여운 얼굴, 동그란 눈, 부드러운 털, 야옹거리는 귀여운 목소리... 사랑할 수 밖에 없는데. 아무튼 그런 느낌이다. 모든 제주도민이 귤나무를 키우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우리 집에는 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도민의 기분이랄까.



 그러면서 동시에 퀴어는 고양이에게 끌릴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펼치고 싶다.



 세상에는 여러 반려동물이 있지만, 보통 개와 고양이가 대표적인 반려동물로 꼽힌다. 하지만 개는 고양이에 비해 순종적이고 깊이 주인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무리 생활을 하고, 주변과 어울린다. 반면 고양이는 독자적인 생물이다. 외로움도 느끼고 애정을 주는 대상이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세계와 구역이 있다. 고양이는 '퀴어'하다. 남과 어울릴 수 없을지도 모르는 독특하고 특별한 세상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퀴어와 고양이 사이에 있다. 퀴어들은 고양이를 키우며 때로 뒤죽박죽하는 자신의 마음을 투영해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가벼운 우스갯소리와 함께 퀴어의 고양이 예찬론을 펼쳐봤다. 세상의 모든 고양이, 특히 치즈 고양이는 행복과 건강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 중에서 루나가 가장 많이.


 난 이제 마취에서 깨어날 루나를 보러 가야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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